특집. 불교 내일을 위한 제언 11
최근 필자는 불교에 관한 아주 이색적(?)인 두 권의 책을 읽게 되었다. 하나는 <과학과 불교의 실제 인식> (앨런 월리스. 범양사 출판부)이고, 다른 하나는 <나는 불교를 이렇게 본다 >(김용옥. 통나무)이다. 앞의 책에서 저자는 불교에 대한 자신의 결론으로 `물리학과 불교가 현대 세계에서 서로 만날 때 바로 이 깨우침의 정신에서 그들은 가장 심오한 친화성과 통합성을 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말을 하고 있다.
반면 뒤의 책에서 저자는 폭넓은 잡학의 힘을 배경으로 불교를 (저자는 불교와 불자를 혼동하는 듯이 보였지만)난도질하다 못해 극언을 서슴지 않는 용기(?)를 과시하고 있다.
그중 차마 옮겨 쓰기도 송구스러운 대목 하나를 이 글의 전개를 위해 독자의 양해를 구하면서 소개하면 이렇다.
"오늘날 우리나라 큰스님들이야말로 우리를 구원할 자들이 아니라 우리가 구원해주어야 할 가련한 악의 실천자들이다."
한 사람 (외국인)은 서양 과학자로서 불교에 대한 개안 (開眼)을 논리적으로 전개한데 반해 또 한 사람 (내국인)은 자신이 알고 있는 가장 지독한 어휘를 동원해 불교를 매도한 셈이다.
이 두 개의 상반된 시각 속에서 필자는 불교언론의 두 가지 사명, 즉 적극적인 포교수단으로서의 사명과 불자들의 권익옹호 수단으로서의 사명을 읽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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