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마지막에 남아있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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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마지막에 남아있는 것
  • 관리자
  • 승인 2009.07.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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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지심 연작소설-마지막회-

얘, 사람 사는 일이 이렇게 허무할 수가 있니?”

조금 늦게 모임에 참석한 선희가 자리에 앉자마자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말했다.

"자다가 봉창 두드린다고 새삼스럽게 무슨 허무타령이니?”앞에 앉았던 정옥이가 핀잔을 주며 쳐다봤다.

“새삼스러운게 아니라 정말 허무해서 그래. 부부라는게 이 정도의 의미밖에 안된다면 같이 살아야 할 이유가 뭐가 있니?”선희는 앞에 놓인 엽차잔을 들어 물을 몇 모금 마시더니 정말 살맛이 안 난다는 얼굴로 좌중을 둘러봤다.

“무슨 일이 있었는데 그러니?” 강여사 옆에 앉았던 선은이가 관심을 나타내며 묻자,

“글세, 김민호씨가 청첩장을 보낸거 있지.”선희는 이렇게 말하더니 기가 막히다는 얼굴로 좌중을 둘러봤다.

“……”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도 모두 선희와 비슷한 표정을 지으며 서로의 얼굴을 쳐다봤다.

"청첩장 내용이 뭔 줄 아니? ‘평소 저희들에게 보내주신 후의에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저희 두 사람은 여러 친지들을 모신 앞에서 새 가정을 이루고자 하오니 다망하신 중에도 꼭 오셔서 저희들의 출발을 축복해 주십시오’. 이거야. 저희들의 출발을 축복해 달라니 세상에 그럴 수가 있니?”

선희는 흥분을 이기지 못하며 언성을 높여 말했다.

“마누라 죽으면 사람들 앞에선 울지만 화장실 가서는 웃는대잖아.” “그거야 다른 사람들 얘기지. 김민호씨가 어떻게 그럴 수 있니?” “그 사람도 남잔데 다 같겠지 뭐. 그러니까 너부터라도 억울하면 오래 살아.”

……

억울하면 오래 살아라는 정옥이 말에 모여 있던 사람들은 모두 허탈한 얼굴로 입을 다물고 있었다. 참말로 부부 관계란 것이 별게 아니구나 하는 생각을 속으로 해보면서.

그들의 친구인 영주가 김민호씨를 처음 만난 것은 고등학교 2학년 때였다. 영주는 걸스카웃 이었고 민호는 보이스카웃 이었는데 비교적 유복한 가정의 맏딸인 영주는 얼굴도 곱고 마음씨도 곱고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쾌활해서 처음서부터 민호의 마음을 사로잡는데 모자람이 없었다. 두 사람은 사춘기 소년소녀다운 열애에 빠졌고, 그 열애는 대학생이 된 후에도 그대로 이어져 그들 두 사람은 주위 사람들한테도 사랑하는 연인 사이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런 만큼 그들은 행복했다.

민호가 대학교 2학년이었는데 민호 아버지는 자신이 경영하던 회사에 부도를 내고 종적을 감췄다. 그러자 그들 집은 물론 가구집기, 침구 심지어는 밥그릇 숟가락에까지 차압딱지가 붙여졌다. 삽시간에 거리로 쫓겨난 가족들은 친척들 집을 찾아 뿔뿔이 흩어지게 되었고 그 와중에 민호도 휴학을 하고 군에 지원입대 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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