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자의 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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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자의 미학
  • 관리자
  • 승인 2009.07.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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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유희[禪語遊戱]

비 내리는 날 인사동에서 점심을 먹고 조계사 일주문과 마주한 ‘템플스테이 통합정보센터’에 들렀다. 입구에서 계단을 올라가는데 머리 위로 비가 후둑후둑 떨어진다. 접었던 우산을 다시 폈다. 고개를 치어드니 건물 속인데도 담장 위로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또 의도적으로 높다란 담벼락을 뚫어놓고 창문을 달지 않아 비바람이 안으로 치도록 만들어 놓았다. 비가 오고 눈이 내리는 걸 사무실 안에서도 느끼도록 했다는 작가의 의도가 가장 잘 드러난 부분이라는 말을 실감케 한다.

직선으로 꼭대기 층까지 이어진 서편의 오층 계단은 마치 달동네를 올라가는 계단 길처럼 느껴졌다. 동편으로 난 일반적인 건물 계단 사이사이로 훤하게 뚫어진 창문은 곁에 있는 ‘마음씨 좋은 교회’(집 지을 동안 거의 민원제기가 없었다) 마당이 훤하게 보인다. 두 집이 서로 다르면서 또 어울리는 풍광을 연출하고 있다. 덕분에 그 교회도 담장과 대문을 헐고 마당에 나무랑 조경을 새로 꾸몄다. 역시 모든 것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기 마련이라는 연기세계의 도리를 알게 해준다.

이 집은 요즈음 가장 자주 세인의 입에 오르내리는 유명한 현대 건축가 승효상 씨의 작품이다. 그의 건축관은 1992년에 초고로 나온 「빈자의 미학」에 잘 드러나고 있다. 1996년 단행본으로 묶었다. ‘가짐보다 쓰임이 더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더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더욱 중요하다’는 그의 삶의 철학을 이 건물을 통하여 유감없이 발휘하고 있다. 각 층의 별개의 채는 길을 통하여 연결되고 자연과 소통될 수 있도록 공용공간인 계단을 건물의 동쪽과 서쪽 양편에 최대한 넓게 배치했다. 이 집은 사찰구조처럼 열린 집을 추구했다. 그리고 무문(無門)을 지향했다. 누구나 와서 머물 수 있도록 그 안내자의 역할을 자처한 건물인 까닭이다.

승효상 씨는 종교의 자유를 찾아 월남한 집안의 자손이다. 하지만 젊을 때 그런 집안 분위기가 때론 매우 부담스러웠다고 술회했다. 그런 이력 때문에 종교에는 문외한에 가깝던 국민건축가 김수근(1931~1986) 선생을 도와 몇몇 종교시설물 설계에 많은 역할을 맡을 수 있었다. 성당, 교회 건축에서 시작된 그의 종교 건축은 이제 불교계까지 지평을 넓혀 현재 두 점의 성숙된 작품을 남겨 놓았다.

그의 건축사무실 ‘이로재(履露齋)’는 다분히 유교적이다. 가난한 학자시절의 유홍준(『나의 문화유산답사기』 저자) 씨에게 개인집인 수졸당(守拙堂)을 지어주고, 모자라는 설계비 대신 선물로 얻었다는 200년가량 된 이 현판을 보고 단박에 그의 작업 공간 이름으로 삼았다. 물론 기존 상호는 과감하게 버렸다. ‘이로(履露)’는 이른 아침 이슬을 밟으며 부모의 묘를 찾아가는 효자의 마음을 대변한 언어였다. 묘제축문은 “서리와 이슬을 밟고 묘소를 찾아보니 사무치는 정이 더욱 간절합니다(履玆霜露 彌增感慕)”라는 문장으로 정형화되어 있다. 하지만 본뜻과 상관없이 ‘밤새도록 열심히 일하고 새벽녘에 이슬 밟으며 퇴근하라’는 건축가의 내심을 반영한 것으로 직원들에게 오해받을 소지도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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