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古寺의 향기] 설악산 신흥사(新興寺)
상태바
[古寺의 향기] 설악산 신흥사(新興寺)
  • 관리자
  • 승인 2009.06.26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古寺의 향기
▲ 신흥사 극락보전

 

 1 역사를 잇는 목소리

 동해에 면한 설악산의 양지. 이른바 외설악은 신흥사. 내원암, 계조굴로 잇는 성스러운 지역이다.

일찍이 여러 수행인들이 사철 흰 눈을 이고 수려한 계곡을 그 사이로 흘러내리며 흰 구름 자욱히 신비의 경계를 이룬 설악을 찾아 들었다. 그리고 깊은 도리를 체득한 노인들은 역사를 이어 설악 영지를 지켜 왔다. 불국 신라를 이루는데 커다란 역할을 했던 자장(慈藏)율사 이곳에 머물어 도량을 개설하고 이어 수많은 성자들이 대를 이었다.

 동산(洞山), 각지(覺智), 봉정(鳳頂) 3대사가 또한 이곳에 머물며 마음밖에 도리를 닦아가고 이어 원효. 의상으로 이어 갔다. 그 사이에 몇 차례나 화재를 만나고 또는 가람이 퇴락하여 다시 이룩하며 절기지도 몇 곳으로 옮겨 가고 사찰명도 바뀌어 갔다. 향성사(香城寺)에서 선정사(禪定寺)로 다시 신흥사… 그 사이를 수많은 수행인들이 역사를 이어 산중에 영기를 다해 갔다.

 오늘날 신흥사는 설악산의 중심이 되고 관광의 중심이 되며 건전한 여가활용의 도량이 되고 있다. 수만의 인파들이 모여 들고 흩어진다. 그렇지만 설악산 신흥사는 의연한 옛 자세를 잃지 않는다.

 기난긴 생사여로에 지친 나그네들이여! 어서 오라. 만고적정의 설악의 도량으로 그리고 그 사이를 흐르는 불멸의 광천(光泉)을 마시고 돌아가라. 오늘도 설악은 거룩한 감로를 부어 주는 불멸의 도량으로 우리 앞에 우뚝하다.

 목마른 나그네에게 한 없이 부어 주는 자비의 감로, 오늘도 쉬임없이 우리 앞에 부어진다. 그런데 누가 감로의 광명을 긴 미래에 펼칠 사람인가. 신흥사를 참배하며 다시 숙연해지는 것은 이 도량을 개척하고 오늘에 이어온 조사들의 음성이 너무나 간절하고 역력한 때문이리라. 

 2 창건유래

 신흥사는 신라 진덕여왕 6년(서기652년) 자장율사가 개설하고 절 이름을 향성사라 했다. 그 후 신라 효소(孝昭)왕 10년(701년)에 소실되니 의상대사가 지금의 내원암 자리에 중건하고 이름을 선정사라 했다. 아마도 선정사는 의상대사가 지은 마지막 절인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의상대사는 그 다음해 입적하셨기 때문이다. 선정사는 크게 번창한듯 고려에서 조선 전기에 이르는 9백여년 동안을 설악산의 중심이 되었던 것이다. 조선조 인조(仁祖) 20년(서기1642년) 선정사는 다시 화마를 만난다. 그래서 2년 후인 인조 22년에 중창하게 이른다. 당시의 고승 영서(靈瑞), 연옥(蓮玉), 혜원(慧元)등 3대사는 일념으로 고찰의 중건을 염원했다.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