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불교의 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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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불교의 발전(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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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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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불교

붓드하다사는 예술 작품을 통해 불교의 진수를 전하고자 노력한다. 이세상에서의 우리의 생존은 집착으로 특성지워지며, 집착이 고통을 낳고 고통은 자아의 취득심으로부터 벗어날 때만 극복된다. 그 불교 미술관을 통해 붓드하다사가 나타내고자 하는 두가지 근본적 주제는, 사물계에 대한 집착의 본질과 결과, 그리고 그것을 넣어 불교가 지향하는 목표이다. 놀라웁게도 그 목표를 기술하고자 붓드하다사가 사용하는 빨리 용어는 순냐(sunna), 혹은 空으로서, 홀을 압도하고 있는 거대한 흰 원으로서 상징된다. 순냐는 부정적 개념이 아니라, 불교가 탐구의 목표로 함은 아주 실답고 적극적인 존재의 상태이다. 그것은 대상에의 집착상태의 반대를 나타내다. 그것은 대상이 없고, 우리 일반적 이해의 차원에 속하는 속계의 특징인 모든 양극성과 구분을 넘어선다. 다른 종교에서와 같이 불교의 궁극적 실재는 언어작용을 넘어난 것이라고 붓드하다사는 말한다. 인도와 중국의 성인뿐 아니라 많은 기독교신비주의자와 같이 궁극적 실재는 개념화를 넘어선다고 주장한다.이주제는 붓드하다사가 상용한 초기 인도의 많은 부조 가운데 표현되어 있다. 그속에서 우리는, 불타란 집착의 대상이 되어선 안된다는 그의 주장의 확인 가운데서 불타를 의인화하는 것에 대한 줄기찬 거부를 발견한다. 아무것도, 위대한 스승 자신 조차도 궁극적 실재로 숭배될 수 없다.

인도의 초기 불교에 예술 형태의 광범한 사용을 붓다의 독특성, 그의 순수한 가르침, 그리고 전통의 시초를 강조한다. 불교 내에서도 후기의 발전 가운데 많은 것이 외래적이고, 불타의 순수한 가르침과 의도에 반하는 것이기조차 하다고 주장한다. 빨리 경전도 초기 전통에 대한 후대의 확장임을 인정해야한다고 그는 역설한다. 그는 정통적 테라와다 믿음에 표준이 되는 많은 아브히담마(Abhidhamma)문헌을 만든 장노파 교사에 대해 특히 비판적이다. [ 그들은 불교라는 나무를 꼭대기부터 기어 내린다 ]고 그는 말한다. 마찬 가지로 그는, 불교 승려의 점술부터 캄마(Kamma, 業)와 삼사라(Samsara, 輪廻)의 물리적 해설에 대한 부당한 강조에 이르기까지, 태국 불교 내에서의 많은 가르침과 실행에 대한 철저한 비판자이다. 삼사라는 육체적 재생(rebirth)의 연속으로 설명되기 보다는, 자아에의 몰두로부터 해방되는新生 (new birth)을 가르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그는 주장한다. 캄마는 원인과 결과의 도덕법칙에 대한 기술이라기 보다는 그것을 뛰어 넘어 불교가 지향하는 조건에 대한 기술로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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