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체류기] 초전법륜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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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체류기] 초전법륜의 길
  • 서경수
  • 승인 2009.06.2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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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붓다가야를 떠난 것은 이른 아침 여섯시, 가야에서 바나라시행 기차를 탔다. 옛날 부처님은 중생교화를 위한 설법을 결심한 후 걸어서 갔지만 나는 기차를 타고 그 길을 따라 갔다. 일등 차칸이라 하지만 4명 정원은 넘어 10명에 이르렀다. 마침 결혼식장만 찾아다니는 이동악단(移動樂團)과 합석하게 되었다. 인도 고유의 소형 오르간과 타악기 타부라와 큰북, 그리고 가수 한사람으로 구성된 고전악단(古典樂團) 단장인 듯한 가수에게 한 곡 청했더니 서슴치 않고 악기연주에 맞추어 한 곡 시작한다.

  크리쉬나신(神)이 결혼하는 신랑, 신부의 앞날을 축복하는 노래이어서인지 리듬이 경쾌하고 멜로디도 명랑하다. 가사의 내용은 전쟁 몇 겁(却) 동안의 인연이 맺어져 이루어진 부부의 가연(佳緣)이므로 금생만 아니고 내생까지 가연을 이어 나가기를 빌며 이 가연을 크리쉬나신이 이미 점지한 것이 되어 축복한다는 것이다. 노래하는 대대로 성전(聖典)을 영창(詠唱)하며 전국을 순회하는 것이 직업이라고 한다.

  이른바 고전적 음영시인(古典的吟詠詩人)이다. 우파니샤드의 구절까지 음영할 수 있다는 그 브라흐만은 세간적 가난한 생활에는 몹시 찌들린 듯 나이보다 열 살은 늙어 보인다. 슬하에 아들 다섯과 딸 둘을 두고 있다고 하며 그의 수입은 성전영창(聖典詠唱)에서 얻어지는 것뿐 다른 재간도 없다. 브라흐만 신분 때문에 천직(賤職)을 택할 수 없기 때문에 가난한 브라흐만은 막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수드라보다 더 가난하다고 한다. 그런데 시대가 달라져서 그의 영창을 들어주는 사람의 수도 해마다 줄어 지금은 사양(斜陽)의 길을 걷는다고 하며 얼굴에 어두운 그림자를 띈다. 그러면서 성전을 음영하며 전국을 유랑하는 생활을 못 버리겠다는 것이 그의 솔직한 술회다. 그이 모습에서 옛날 일생동안 방랑하며 성전만 음영하던 시성(詩聖)들의 자취를 읽을 수 있었다. 다음 역에서 내리겠다고 하며 음영유랑시인은 구슬픈 일생을 읊은 애절한 대목 한군데를 자진하여 가창(歌唱)한다. 유랑시인의 운명을 한탄하는 구절에서 눈물까지 흘리는 그의 영창은 나의 가슴을 뭉클하게 하는 무거운 감동을 주었다. 이 순간 내 머리에는 옛날 길을 걸었던 부처님도 정처 없이 유랑하던 멋있는 음영시인이 아니었을까 하는 환상이 떠올랐다. 지상적(地上的) 고향을 등지고 오직 고통 하는 인간들이 사는 세속의 구석구석을 찾아다니며 진리의 법을 읊었던 부처님도 여기 내 앞에 앉아 있는 유랑시인처럼 음영시성이 아니였을까. 그는 전교(傳敎)의 길을 떠나는 제자들을 보고 「너희들은 외뿔소처럼 항상 고독하게 길을 걸으라」고 타일렀다. 이 세상에서 정처 할 고향을 버리고 유랑하는 사람은 일생 고독하기 마련이다. 제자들을 보고 중생을 위하여 법을 노래하는 음영시인이 되라는 뜻이다.

  오늘날에도 점심시간 관청부근에 가면 나무 그늘 아래서 많은 청중을 모아 놓고 고전을 읊는 유랑시인들을 더러 본다. 부처님도 중생들이 모여 앉은 나무 그늘을 찾아 그들에게 고통에서 벗어나는 평화의 길을 쉬운 노래로 가르치며 돌아 다녔다. 무주처(無住處)가 사문(沙門)의 길이라면 사문의 길은 유랑시인들과 별로 다름이 없다. 가장 위대한 사문은 가장 위대한 음영시성이다. 부처님도 바로 위대한 사무이면서 또 유랑시성이었다. 그래서 그는 길 위에 태어나 길 위를 정처 없이 돌아다니면서 그 길을 가르치다가 길 위에서 돌아가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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