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믿음의 길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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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믿음의 길을 찾았다
  • 관리자
  • 승인 2009.06.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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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수기

󰊱행복했던 시절

저는 경기도 양주군 와부면 월문리에서 위로는 언니 넷이 있는 농가의 막내딸로 태어났습니다. 아들이 없는 집의 다섯 번째인, 막내딸로 태어났지만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받으며 곱게 자랐습니다. 봄이면 앞산 뒷산에 나물 캐러 다니며 늘어진 수양버들 꺾어 피리를 불었고, 여름에는 흐르는 시냇물에 물장구 치고, 가을에는 황금물결 치는 논․밭 풍경을 보면서 꿈을 키웠습니다.

어머니는 입춘이나 4월초파일, 백중․ 동짓날 등에는 쌀가마니에서 맨 처음 한 말내어 돌과 뉘를 골라내시고 목욕을 하신 다음 몸을 깨끗이 단장하시고는 고개 넘어 있는 묘적사(妙寂寺)에 가시곤 하였습니다.

가끔 따라다니며 부처님께 절도 하면서 자란 저는, 아마도 그때부터 제 가슴 속에 불심의 씨앗이 싹텄던가봅니다. 18세가 되던 해에 저는 중매결혼을 하여 시집인 서울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시부모님들은 모두 불교를 믿으셨습니다. 남편이나 시아버님은 모두 크게 식료품점을 하고 계셨고 장사가 잘 되어 불편한 것이 없이 살았습니다. 위로 하들 하나, 딸 둘, 3남매를 낳고는 저도 남편을 도와 장사를 하기 시작했는데, 운이 좋았던지 장사는 계속 불어나 눈 코 뜰 사이없이 바빴고, 집도 사고, 땅도 사고, 산도 사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큰부자 소리를 들으며 살았습니다. 그 동안에 둘째 아들과 딸둘을 더 낳아서 모두 6남매<2남 4녀>를 잘 키우며 20년 동안을 근심 걱정없이 살았습니다.

 

󰊲극난에서 참회기도

부처님의 바른 법을 모르고 살았기 때문인지 남에게 빚보증 서준 것이 잘못되어 재산을 남의 손에 넘겨주게 되었습니다. 그 와중에 큰딸과 둘째딸은 출가를 하게 되었고, 남은 아들 둘, 딸 둘과 함께 급기야는 거리에 나앉는, 끼니까지 걱정을 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많은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가고 남은 것이라고는 임야 4만평 뿐이었는데, 그것마저도 빚보증으로 반만 소유하게 되었습니다. 매매가 되지도 않고 해서 큰 집에 살았던 우리는 홀 시어머님을 모시고 종로 효자동에 월세방으로 이사를 하였습니다. 얼마후 4월초파일이 되었습니다. 손에 쥔 것도 없이 옛날에 장사를 할때 다니던 서울 세검정 관음사에 갔습니다. 주지스님이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공양을 한 후 법문도 듣고 부처님전에 나아가 오늘의 나를 참회하고 모든 것을 부처님께 의지하는 마음으로 간절히 정성다해 기도를 했습니다. 마음속으로 나를 돌볼 분은 오직 부처님뿐이시다 하는 생각 뿐, 다른 생각은 모두 버리고 염불을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불교가 무엇인지 제대로 모르면서 기도만 했던 것 같습니다. 그날밤 집에 돌아와 잠을 자는데 꿈속에서 웬 하얀 할아버지가 나타나셔서 「사흘 후에 좋은 일이 있을 테니 꼭 성사를 시켜라.」하시고는 홀연히 사라지셨습니다. 3일후에 뜻밖에도 임야가 팔렸습니다. 내정성 다하면 부처님 가호가 크게 내게 임한다는 것을 새삼 느꼈습니다. 그런 후에는 또 사느라 바빠서 부처님을 찾지 못하고 지냈습니다. 산을 판 돈으로 도봉구 창동에 집도 사고 이사도 했지만 또다시 어려움에 시달리게 되었습니다. 큰 다들이라도 취직이 되었으면 하는게 바램이었는데 그것도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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