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 이야기] 이승과 저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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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이야기] 이승과 저승
  • 김영길
  • 승인 2009.06.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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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구경 이야기

세존께서 죽림정사에 계실 때이다. 쿤다라는 이름의 돼지잡이 백정이 있었다. 그는 마흔 다섯 살의 중년남자였다.

  한창 흉년일 때 그는 수레에 쌀을 가득 싣고는 시골로 가서 싼 값에 돼지새끼들을 거두어 오곤 했다. 그의 집 뒷켠 허술한 돼지움막 속에서는 어린 돼지새끼들이 오물과 배설물들을 뒤집어쓰고 먹고 자고 있었다.

  쿤다는 돼지가 잘 자라면 이렇게 도살했다. 돼지를 기둥에 꽁꽁 묶고는 육모 방망이로 때려잡는 것이었다. 살코기를 부풀게하고 연하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리고는 턱을 벌려 젖히고 칼로 자갈을 물리고 입 속으로는 펄펄 끓는 물을 부어넣었다. 물은 돼지의 뱃속으로 들어가 똥물을 씻어 항문으로 쏟아내는 것이다. 항문에서 나오는 물이 맑아지면 이번에는 끓는 물을 돼지의 등에다 쏟아 검은 털가죽을 벗겨냈다. 그리고는 칼로 목을 베었다. 그때 쏟아지는 핏물을 대야에 받고 나서 돼지를 구어 그 붉은 피로 시침질했다. 그런 다음에야 고기를 베어 온가족이 즐겨 먹거나 내다팔았다. 이것이 쿤다의 생활이요 직업이었다. 그러한 그에게도 스승이 있고, 신앙도 있었다. 그러나 멀지도 않은 곳에 사는 스승을 위해 단 한번도, 단 한 웅큼의 꽃이나, 한술의 공양미도 올린 적이 없고, 누구를 위해 자비를 베푼 적도 없었다.

  이런 그가 병에 걸렸다. 그리고 생명의 불이 꺼지기도 전에 아비지옥의 화염이 치솟아 그를 덮쳤다 - 천리 밖에 선 사람도 눈을 멀게 한다는 아비지옥의 불꽃은 영원히 팔방 천리로 뿜어지는데 그 불길에 닿으면 돌탑도 순식간에 녹아버린다. 그러나 죄과의 업장과 고통만은 녹지 않고 남았다가 다음 생으로 전해진다고 한다 - 그러자 돼지도살꾼 쿤다의 행동은 업보에 따라 돌변하고 말았다. 비록 산 채로 그의 방안에 있는 그였지만 돼지처럼 꿀꿀거리며 두 손과 무릎으로 기어다니기 시작했다. 앞마당으로 뒷마당으로 꿀꿀대며 기어다니는 그의 힘이 또 돼지처럼 센지라 온 식솔이 다 덤볐으나 재갈을 물릴 수도, 붙잡아 맬 수도 없었다.

  그날로부터 쿤다의 식구들은 죽음의 공포에 떨며, 밖으로 기어나가려는 쿤다를 막느라고 사방에 바리게이트를 치고 지키느라 잠을 잘 수 없었고, 쿤다의 이웃 일곱집에서는 왝왝거리며 울부짖는 돼지의 울음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쳤다. 일주일간의 혼란과 고난을 치른 뒤에야 쿤다는 울부짖으며 숨을 거두었다. 그리고는 아비지옥에 환생했다. 그즈음에 어떤 수도승이 쿤다의 마을을 거쳐 불타에게로 갔다.

  「세존이시어! 일주일간이나 도살꾼 쿤다의 집은 문이 잠긴 채 돼지의 울음소리만이 요란했습니다. 전에 없이 무자비하고 많은 돼지를 죽이는 듯 했습니다.」

  「비구여, 이번 일주일간은 아무도 돼지를 죽인 일이 없다네, 그 소리는 아비지옥의 불길에 싸인 쿤다가 이승의 마지막 일주일 동안 돼지의 과보를 받아 울부짖는 고통의 소리였네. 그는 오늘 죽어 아비지옥으로 갔다네.」

  석존은 이렇게 말한 뒤에 게송을 읊으셨다.

 

  악인은 이승에서 괴롭게 살고

  저승에 가서도 고통을 당한다.

  자신의 죄악상을 스스로 보면서

  이승과 저승을 고통 속에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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