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구경(法句經)의 만남
상태바
법구경(法句經)의 만남
  • 관리자
  • 승인 2009.06.05 00: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나의 인생을 결정한 불교서

“경전을 아무리 많이 외워도, 행하지 않는 방일한 사람은 남의 소를 세는 목동과 같아 사문된 결과를 얻기 어렵다.” 이것은 법구경 19송이다.

종교는 수행의 결과이다. 지식이나 논리로서 이룩되는 것은 아니다. 앎이 곧 실천이 아니다.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행하지 아니함은 위선적인 자기만족에 치우치기 쉽다.

남의 소를 세는 목동은 얼마나 허망할까. 한 마리의 송아지일지라도 잘 길러야만이 자기 몫이 되는 것이다. 저 들판에 방목된 남의 소를 수 없이 헤아려보아도 제 몫은 되지 않는다. 게으른 사람은 언제나 밭고랑을 셈해 보는 것이다.

세 살 먹은 아이도 말할 수 있지만 여든 살 노인도 행하기 어려움이 바로 모든 악을 끊고 뭇 선을 행함이다. 코 만지다 알 수 있는 일이요, 눈깜박거릴 때 깨칠 수 있는 일이다. 부처님의 말씀이나 옛 성현의 어록은 견문하는 것으로 다 끝난 것이다 아니다. 알고 나면 행함이 있어야 한다. 지행일치가 되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나를 불교인으로 이끌게 된 것을 무엇일까. 아니 내가 언제부터 불교를 접하게 되고 불교를 신수봉행하게 되었을까. 가만히 기억을 더듬고 살아온 여정의 한 길목을 거슬러 올라가야만 한다. 나는 고등학교를 부산에서 다녔다. 고등학교 때가 아니라 중학교에 다닐 때 벌서 대각사 불교학생회의 일원이었다. 무언가 알려고 열심히 대각사에 나가고 새벽 목탁석을 보수동· 대신동 쪽으로 돌면서 염송하기도 하였다. 그 어릴 때의 신앙성을 생각하면 지금도 놀라게 된다. 정말 물불 가림없이 열심 그것이었고 부처님밖에 모르는 것이었다.

그렇게 열심함에 비하여 불교의 교설이나 사상은 별로 아는 것이 없었다. 찬불가, 꽃공양 노래, 사명대사 추모가, 녹화(綠化)운동 노래등이 그저 좋기만 하였다.

이런 외연적인 일들이 나를 어린 구도자로 이끌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고등학교 때 불교의 진수가 무엇인가 알고 싶고 불교적 사상으로 나라에 기여할 수 있는 무엇이 없는가 하는 의심이 들기도 하여 무슨 책을 읽어야 한다는 생각이 엄습하였다. 그 때만 하여도 한글화된 불교책은 없었다. 고작 ⌜천수경⌟⌜한문 반야심경⌟을 외우는 것이 대단한 일이고, 고등학생 신분으로 한문 반야심경을 달달 외우는 것이 큰 자랑이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만족할 수 없어 보수동 헌 책방을 뒤지기 시작하였다. 보수동 골목에는 없는 책이 없었다. 6· 25이후 피난 대학이 부산에 죄다 모여 있었고 또 부산이 피난처가 되었기에 모든 매물이 부산 국제시장, 자갈치, 범내골, 초량 영도다리가 일대시장이 되었다. 그런데 헌책들은 대청동, 보수동거리에 집합지가 되었다. 없는 책이 없었지만 무엇을 골라야만 불교를 이해할 것인지 막연하였다. 이 집 저 집, 이 책 저 책을 눈여겨보다가 나도 모르게 ‘불교성전 법구경 강의(佛敎聖典 法句經講義)’가 눈에 띄었다. 헌 책이었지만 눈이 밝아 오는 것 같고 무엇에 빨려 들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구나. 내가 찾았던 책이 바로 이것이다 하는 생각이 앞서면서 문득 책을 뽑아보게 되었다. 그러나 경률을 느꼈다. 왜 경률이 왔을까. 불교책이면 내 지식의 빈공을 채워 줄 것이라고 생각하였고, 우리 말로 된 것이라 생각되었고 이 만한 분량이면 하루만에 독파할 것이라 자신하였는데····.


인기기사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최신 불교 뉴스, 월간불광, 신간, 유튜브, 붓다빅퀘스천 강연 소식이 주 1회 메일카카오톡으로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많이 구독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