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성(龍城)의 성모(聖母) 밀양 손씨(孫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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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성(龍城)의 성모(聖母) 밀양 손씨(孫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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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6.0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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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 만세 여성불자 만세!

용성 스님, 그는 누구인가. 민족의 지도자요 독립운동가며, 위대한 선각자요, 대선사며 위대한 포교사다. 불교 쪽에서 보면 그는 확철한 깨달음을 바탕으로 한국의 선풍을 우뚝하게 세워 놓은 거장이며 우리 불교계의 율맥을 그토록 외세의 외압이 가중되던 상황에서도 굳건히 이어온 대율사였다. 현대포고방법을 도입하여 노랫말을 쓰고 작곡을 했으며 스스로 악기를 다루었고 특히 대각사상을 천양하였다.

한국인에게는 오로지 한글만이 있을 뿐이라고 누누이 강조했던 우리말 사랑의 실천가였다. 그의 말에 의하면 조선인은 조선인에게 알맞은 조선어가 있고 그 조선어 조선글을 조선인이 사랑하지 않는다면 누가 조선어 조선글을 사랑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래서 당시 불교인들의 빗발치듯 쏟아지던 비방을 감내하면서도 삼장역회를 설립하여 수많은 한문 경전을 한글로 옮겼던 것이다. 한국불교에 있어서 승려로서의 역경에 대한 역사를 살펴 본다면 용성은 당연히 역경의 초조(初祖)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용성선사는 민족의 지도자로 독립운동가로서 대단한 활약을 한 분이다.

만해 스님의 자문 역할을 담당하면서 33인의 민족대표가운데 네 번째로 서명하였으며 끝까지 민족의 자주독립을 고수하다가 서대문 감옥에서 3년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그의 독립정신, 민족의 자주정신은 감옥에서도 그칠 줄 몰랐다.

특히 불교인의 새로운 삶을 강조하면서 선농일치(禪農一致)를 주창하였다. 중국에 백장이 있었다면 우리나라에는 용성이 있었다. 중국의 백장은 불교인으로서만 활약했지만 용성은 불교인인 동시에 조선인이었다. 현재 한국불교 승려의 절반이상을 훨씬 넘는 승려가 바로 용서의 문도라고 하는 사실 하나만 놓고 보더라도 그의 그늘이 얼마나 컸었는가는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이다.

이런 위대한 선각자이며 고승이었던 그에게도 어머니는 있었다. 하기야 세상의 어떤 인간 어떤 생명이 부모가 없으랴만 용성에게는 진정 자애로운 어머니가 있었다. 그의 어머니는 밀양 손씨였다. 용성은 1864년 5월 8일 전남 남원군 하반암면 죽림리 (당시의 지명)에서 태어난다. 아버지는 수원 백씨로서 그의 이름은 남현이었고 어머니는 손사형의 딸인 밀양 손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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