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도속의 홍련(紅蓮)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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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도속의 홍련(紅蓮)
  • 관리자
  • 승인 2009.05.3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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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작소설

   "10시까지 사무실로 나갈게요."

   강여사는 출근하는 남편 등에 대고 이렇게 말했다.

   "알았어. 늦지 않게 나오라고."

   남편은 들고 있던 구두칼을 신발장 위에 올려 놓으며 아내를 돌아다 보더니 현관 층계를 내려갔다.

   남편이 출근하자 강여사는 서둘러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다. 설거지를 하고 아이들 양말을 빨아 넣고 청소를 하고… 주부가 하루 집을 비운다는 것은 가족전체에 부담을 주는 일이기 때문에 강여사는 가능한 가족들한테 돌아가는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2·3일 전서부터 세심하게 준비를 해 왔었다.

   하기 때무네 하루쯤 집을 비운다 해도 아이들이 별 불편없이 도시락을 챙겨 가지고 학교에 갔다 올 수 있을만큼 만반의 준비가 돼 있었다.

   청소를 끝낸 강여사는 세수를 하고 방으로 들어와 얼굴에 로션만 바르고 옷을 갈아 입었다. 절에 갈때는 화장을 하지 않음은 물론이고 옷도 가능한 화려한 색은 피하는 것이 상식이므로 강여사는 검은 바지에 두터운 스웨터 하나를 걸치고 회색 법복을 따로 가방속에 챙겨 넣었다. 법복을 입으면 절을 하기가 편하므로 강여사는 일 년 전서부터는 절에 갈 때마다 꼭 법복을 따로 챙겨 가지고 다녔다.

   모든 준비를 끝낸 강여사는 시어머니방으로 들어갔다.

   "어머니 다녀 오겠습니다."

   "오냐, 참 절에 가거든 꼭 산신기도를 드리고 오너라. 애비는 어려서부터 산신기도를 드려왔기 때문에 산신기도를 드려야 한다."

   "네…"

   시어머니 당부를 받은 강여사는 어정쩡하게 대답을 하고 집을 나섰다.

   관음도량에 가서 굳이 산신기도를 따로 드려야 하는 것도 이상했지만 솔직히 말해서 강여사로선 산신기도라는 개념이 명황하게 가슴에 와 닿지 않았다. 아니 산신이라는 말 자체가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할 것 같았다.

   산신은 불교에서 말하는 화엄신장 중의 하나인지, 신선을 의미하는건지 아니면 또다른 무슨 신이 있는건지 강여사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젊은 시절 아들 하나를 데리고 청상이 된 시어머니는 아들을 위해 늘 산신기도를 드려왔다고 하는데 이번에 아들 생일을 맞아 절에 기도를 드리러 간다는 말을 듣고 산신기도를 따로 드리라고 당부를 한 것이다.

   집을 나선 강여사는 남편 사무실을 찾아갔다. 내일이 남편 생일이었고, 남편 생일을 맞아 함께 홍련암에 가서 기도를 드리기로 약속을 했기 때문이었다.

   남편은 이미 50고개를 넘었고 50 고개를 넘기는 몇 년 동안은 고전에 고전을 거듭하고 있었다. 강여사로서는 그런 남편을 지켜보는 일이 괴로웠다. 하지만 괴로울 뿐 달리 남편을 도와줄 힘이 없었다.

   그래서 생각던 끝에 이번 생일은 자기와 함께 홍련암에 가서 관음기도를 하자고 청했다. 그러자 남편은 아내의 청을 선선히 받아들여 줬다. 전에 같으면 말도 못꺼내게 했을 일인데 남편은 선선히 받아들여 줬다. 강여사는 그런 남편이 고맙기도 했지만 또 한편으로는 가슴이 아프도록 측은하기도 했다. 얼마나 절박했으면 자기와 같이 기도를 드리러 갈 결심을 했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사무실에 도착하자 남편은 강여사를 기다리고 있었다. 거리를 나온 두 사람은 간단하게 식사를 하고 상봉터미널로 갔다. 양양 가는 시외버스를 타기 위해서였다. 시외버스를 타면 강원도 오지를 샅샅이 지나는 재미와 한계령을 넘는 재미가 각별하기 때문에 그쪽으로 갈일이 있으면 가능한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다.

   남편과 강여사는 오래간 만에 여행 하는 재미를 즐기며 차창밖을 내다 봤다. 화창한 봄이라곤 할 수 없지만 사방엔 봄기운이 완연했다. 버들강아지도 하얀털을 보풀리며 통통하게 살이 쪄 있었고 나뭇가지도 파릇파릇 푸른잎을 피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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