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을 창조하는 불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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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창조하는 불자
  • 관리자
  • 승인 2009.05.2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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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광법단

산하대지의 법문을 듣는 자

산하대지가 법을 설한다. 산하대지가 진리의 광명을 놓고 있다. 이 말은 우리 불문중에서는 흔히 쓰는 말입니다. 산하대지가 법을 설하고 산하대지가 진리의 광명을 놓고 있는데 어떤 사람이 산하대지 내지 허공이 설하는 법을 듣고 있는 사람인가? 그리고 어떤 사람이 산하대지에 충만된 진리의 광명을 보는 사람인가?

사실을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그 대답입니다. 이 대답에 의심을 내는 사람이 있다면 그분은 본래로 밝은 귀 본래로 밝은 눈인데도 나는 장님이로소이다. 나는 귀머거리로소이다 하고 스스로 생각하고 계신 분입니다.

불법은 행동으로서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일심으로 염불하는 가운데서 법문을 듣고 산하대지 가득한 진리 광명을 봅니다. 염불이라는 것은 ‘나무마하반야바라밀’ 하고 염송하는 것이거나 ‘나무아미타불’ 부르는 것만을 말하지 않습니다. 열심히 자기 일을 하고 보시를 하고 독경을 하고 기도하는 사람 그 모두는 법문을 실천하는 것이고 행하는 것이고 참으로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 하나하나 움직이는 가운데서 염념히 생각 생각마다 청정을 실천하고 이 생각 저 생각 흔들리는 가운데서 맑은 본성을 행동으로 옮기는 그 가운데서 법문을 듣는 것입니다. 우리는 청법에 앞서 입정을(入定)을 합니다. 이 입정이 참으로 법문을 가장 잘 듣는 순간입니다. 원래로 밝아서 아무 것도 가릴 것이 없어서 육체에 가렸다 하고 물질에 가렸다고 하더라도 원래 오온이 개공이라, 이유가 있어서 공 한 것이 아니라 본래 공입니다. 그대로 듣고 볼 것인데도 불구하고 못보고 못 듣는다고 하면 이는 믿음이 미치지 못한다고 하는 신불급(信不及)이거나 망념이라고 하는 가리움이 있어서 못 듣고 못 본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입정의 순간에는 망념이 다 쉬고 흔들리는 생각이 다 멈추어서 맑은 본성 그대로가 드러나기 때문에 그 시간에는 법문을 듣는다고 합니다. 법을 듣기 전에 모두가 입정을 하는 이유는 귀를 통해서 들어오는 법문이거나 생각으로 따져서 알아듣는 법문이 아닌 내 생명 속에서 직접 울려오는 법문을 먼저 체득하기 위해서 행하는 것입니다.

법문을 듣고 법문에 친근하는 도리는 사방에 있습니다. 입정하는데서 법문을 듣고, 염불하는 데서 법문을 듣고, 자비한 말 한마디 하는 데서 법문을 듣고, 친절하게 하고 모든 사람에 대해서 거슬리지 아니하고 감사하는 데서 법문을 듣고, 어려워하던 것을 능히 극복하고 난행을 능히 행하는 데서 법문은 들려오고 위신력이 나오는 것입니다.

긍정과 감사가 따르는 기도

만약 불교 믿는 사람 가운데서 어려움을 당해서 당황하거나 하루하루 생활해가는 가운데서 활기를 잃어버리고 불법의 믿음 속에서 새로운 희망과 용기와 활기를 찾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면 믿음에 대한 실천적인 수행이 없기 때문이라 할 것입니다. 활기 있는 부처님의 법문을 자신가운데서 듣지 못해서 그런 것입니다. 이런 분들에겐 제가 이렇게 묻고 싶습니다.수행 일과(日課)를 꼭 지키고 있습니까? 기도를 하고 있습니까? 독경염불하고 있습니까? 불자로서 부처님 법문을 듣고 환희와 용기로 자기 생활을 개척해야 할 터인데 그렇지 못하다고 하면 그는 수행일과를 닦아가고 있지 않는데 있다고 단언합니다.

기도를 한다. 염불수행 일과를 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가 부처님께 “되어 지이다” 하고 구하는 것만 있지 (내 욕망 충족을 향해서 문제 제출만 하는 기도)부처님이 이미 주신 무한 공덕에 대한 명확한 긍정과 감사가 따르지 않은 기도는 산 기도라고 할 수 없습니다. 생기가 있는 산 기도는 반드시 부처님께서 이미 주신 은혜에 대한 긍정과 감사가 있어야 참된 기도, 살아있는 기도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이미 주신 것에 대한 긍정을 하고 감사하면 그 순수한 감사를 통해서 부처님의 진리 광명은 내게로 오는 것입니다. 다음은 전법을 해야 합니다. 불자라고 끊임없이 기도를 한다고 하면서도 전법에 대한 용기와 자신이 없다면 이는 믿음에 생기가 없는 침체되어 있는 믿음입니다.

자비와 보시행은 행복으로 가는 길

다음은 자비행입니다. 참으로 이웃을 도울 줄 알고, 거슬리는 이웃에 대해서도 너그러울 줄 알고, 내가 무엇인가 그 사람의 편이 되고자 하고, 청하지 않아도 벗이 되고자 하고 무엇인가 도와 주려고 하는 진정한 자비심을 발해야 합니다. 그렇지 못하고 관계와 조건을 따져서 마음을 내는 그런 불자의 믿음은 살아 있는 믿음이라 볼 수 없습니다.

다음은 보시행을 해야 합니다. 보시는 물건으로나 돈으로나 마음 씀씀이로나 여러 가지로 할 수 있습니다. 미소와 밝은 말과 부드러운 얼굴로도 도와줄 수 있습니다. 무어니 무어니 하고 애착하며 베풀지 못하는 것도 산 믿음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불교 믿는 사람들이 자신이 진리의 생명으로 산다고 하면서 일상 생활가운데서 활기가 없고 자신 있게 고난을 극복해가지 못한다고 하면 우선 이 네 가지를 반성해 보라는 것입니다. 감사한 생각으로 절실히 기도하고 일과를 지키며 기회 있을 때마다 전법하고 있는가? 자비를 실천하고 있는가? 보시를 하고 있는가? 이런 실천적인 행이 없으면 그 믿음은 관념적인 믿음입니다.

나는 이렇게 부처님을 믿고 있노라 하는 관념적인 믿음이지 살아있는 믿음이라고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어떤 행이든 이 네 가지만 갖추어져 있으면 힘이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 법문을 듣고 우리 자신에 진리 광명이 충만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우리 생활 가운데에 내어 써서 그 불자가 있는 곳으로부터 광염이 나고, 그 불자가 속해있는 가정과 직장과 사회가 활기에 넘쳐서 일체의 고난을 이겨내는 창조적인 삶을 펴나가게 되기를 바랍니다.

입정은 좌선작법으로 하라

입정할 때 내 생명 속에서 직접 울려오는 법문을 듣는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래서 거듭 말합니다만 입정은 좌선 기본작법에 따라서 철저히 해주실 것을 부탁 드립니다.

첫째는 몸을 고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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