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화선과 목조선의 역사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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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화선과 목조선의 역사적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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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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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원리

1. 간화선과 대혜선사
간화선이란 강은 본다 또는 듣는다는 뜻이고, 화는 화두 즉 공안이란 말이니 화두를 참구한다는 뜻이다.  이는 수선(修禪)에 대한 창의적인 하나의 수단이다.  보수침체적 사상에서 공안을 참구하여 깨달음의 경계에 이르는 것이며, 또한 선혜후정(先慧後定)이며 적극적인 선풍이라고 할 것이다.  이 간화선의 발전과정을 살펴보면 대체로 10세기 초부터 대혜(1089~1163) 스님을 계기로 하여 임제종의 결정적인 작법(作法)이 되었고, 12세기 중엽까지에 발전 성취되었음을 알 수 있다.
9세기 말 10세기 초에 운개계붕(雲盖繼鵬)은 처음 상천아선사(雙泉雅禪師)에게 나아가서 파초주장자화(芭焦柱杖子話)(4)를 제시 받았었고, 낭야혜각(瑯揶慧覺)의 제자인 진여방(眞如方)과 대혜의 법사였던 원오극근(1063~1135)선사도 정전백수자 화두를 참구 타파하였으며, 5조 번연(?~1104)은 조주의 무자화두로써 제방의 모든 학인을 제접하였다.  이와 같이 시작하여 점차 발달한 간화선은 대혜선사 때에 이르러 강력히 주장되고 타락의 소굴에 빠져 있는 이른바 목조선을 여지없이 배격하였다. 
한 가지 예를 들면 당시 묵조계통의 인사들에게 눈먼 종사이니, 머리 깎은 외도이니 하는 식으로 혹평을 하였던 것이다.  이 같은 과격한 배척으로 말미암아 대혜는 마침내 모함과 시기를 받아 죄아닌 누명을 입어 형주와 매주의 두 곳에서 가장 15년의 귀양살이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그는 항다반 무자화두로써 학인을 제접하면서 무자(無字)에 대한 간화십병설(看話十病說)을 설했다.  그러나 때로는 마삼근(麻三斤) 간시궐(乾屎橛) 만법귀일(萬法歸一)등의 화두도 사용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이로부터 간화선은 임제스님 이하의 공식적인 선으로 높이 천양되었으며, 이 후 선종이 대성하여 오가와 칠종이 벌어지게 되었다.  그리하여 각자 수법으로 발휘함에 있어 혹은 순설적으로 또는 역설적으로 혹은 동작으로써 응기제접하여 나아가는 도정에서 선풍은 더욱 더 진화적(進化的)으로 그 본지풍광을 노출하게 되어 드디어 할, 방(갈 • 봉) 심지어는 완력으로 쓰러뜨려 발로 밟는(답도) 등 가풍이 생겼다.  마조 백장 임제 황병 등 섬광이 번뜩이고 살활이 자재한 벽안종사(碧眼宗師)가 출현하여 선의 본질을 유감없이 들어냈다.  납자들은 이러한 가풍을 본받게 되었으며, 이것이 선가의 한 근거가 되어 선지를 알든 모르든 간에 덮어 높고 고함지르거나(갈) 두들겨 패거나(봉) 법상을 두들기거나(고상) 눈을 깜짝이거나(순목) 눈을 부릅뜨는 등(노목) 여러 가지 혼란이 생기게 되었다.
이러한 무질서의 작태를 막고, 올바르게 선을 파악하려 함에는 어떤 일정한 방법양식이 요청되었던 것이다.
선사는 임제스님(6)의 십세법손이요, 원오극근의 제자로서 그의 선기는 벽역적인 늠름한 임제가 풍을 재건하였고, 그의 문조는 간명예리하였으며, 또한 대활동가로서 남자를 제접하고 사회를 교화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의 국가관은 송초에는 요나라와 금나라의 침략을 받는 국가정국에 대하여는 대의명분에 입각하여 주전론을 주장하였다. 선사의 거성이었고 일반사상계와 정치계의 큰 표적이 되었었다.  그는 대철안종사로써 선계의 추이에 대하여 철저히 관찰하고 크게 영단한 바 있어 그의 법사인 원오극근선사(1063~1135)가 찬술한 천하선서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역작 벽암록의 원고를 일거에 불살라 버렸다.  이 벽암록의 편찬에는 아마 자신의 조력도 있었을 것이요, 선문의 최상인 구감서에 대한 애착도 매우 컸지만, 그러나 그는 깊이 느낀바와 의연한 결심이 있어 이것을 일거에 불태워 버렸던 것으로 생각된다.  옛날 진시황의 만권시서를 불태움과 함께 동시에 거위 사육사인을 갱살한 것은 오직 그의 독재를 전단하기 위한 수단이었지만, 대혜의 분고는 탈곡득골을 얻고자 함이요, 또한 사기습진을 위함이었다.
선의 구감인벽암록의 문자어구에 얽매이게 되는 당시인들의 병폐를 막고 문자어구가 지니고 있는 진의를 보전하고자 하는 대영단이었다.  이와 같이 우연하고 추상같은 결단으로 간화선의 가풍을 진작하는 한편, 종래에 전승되고 있는 목조선에 대하여는 여지없이 백척하였다.  한 가지 예를 든다면 머리를 깍은 외도(삭두외도)와 눈먼 종사(학안종사)는 모두 묵조계인들이고 혹평까지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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