淨土十疑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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淨土十疑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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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1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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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아미타 신앙

  불보살님은 대자대비를 근본으로 삼으니 마땅히 오탁악세에서 중생들을 구제하기를 서원할 것이어 늘 어찌하여 정토에 왕생하여 편히 지내려 하는가?

  [답] 보살에 두 가지가 있다. 오래도록 보살도를 닦아서 무생법인을 얻은 이라면 이 책망이 마땅하지만 무생법인을 얻지 못한 이와 초발심 범부는 항상 부처님을 떠나지 않고 법인을 성취하고서야 삼계 오탁악세에서 고통 받는 중생을 구제할 수 있는 것이다. 왜냐하면 오탁악세에는 번뇌가 많으므로 참은 힘이 없으면 경계를 따라서 변하게 되며 환경에 얽매어 삼악도에 떨어지게 되니 어찌 능히 중생을 구언할 수 있으랴. 힘이 없는 범부는 아미타불을 전심으로 염하여 삼매를 성취해야 한다. 아미타불을 뵙고 무생법인(無生法忍)을 증득하고 삼계에 돌아와서 중생을 제도하며 불사를 널리 지어 자재하게 되어야 한다.

    제2의 문

  모든 법이 공하여 적멸하거늘 이제 여기를 버리고 저기에 나기를 구하니 이것은 이치에 어긋난다. 경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이 깨끗해지면 곧 불국토가 깨끗하다고 하셨던 것이다.

  [답] 만일 서방정토에 나기를 구하는 것을 가리켜 여기를 버리고 저기를 구함이라 한다면 그대는 여기 있는 것에 집착하여 서방에 나기를 구하지 아니하니 그것은 거기에 버리고 여기에 집착함이다. 이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것이다. 지혜 있는 사람은 정토에 태어나기를 구하면서도 나는 자체를 얻을 수 없어 곧 무생임을 통달한다. 이것이 이른바 마음이 깨끗하면 곧 불토가 깨끗하다 함이요, 어리석은 사람은 나는데 얽매어서 난다는 말을 들으면 곧 난다는 견해를 내고 남이 없다는 말을 들으면 곧 남이 없다는 견해를 내어서 나는 것이 곧 남이 없음이요, 남이 없는 것이 곧 나는 것인 줄을 알지 못한다. 이런 이치를 통달하지 못하고 부질없이 다른 이가 정토에 나려 한다고 성을 내는 것은 잘못이다.

    제3의 문

  시방의 모든 정토가 법성이 평등하고 공덕도 평등하니 수행하는 이가 모든 공덕을 널리 닦아 모든 정토에 왕생할 것이어 늘 이제 치우쳐 아미타불정토만 구한다고 하는 것은 잘못이 아닌가?

  [답] 모든 부처님의 국토가 평등하지만 중생의 근성이 우둔하고 흐리고 잡란한 이가 많으므로 만일 마음을 한 경지에 얽매지 않으면 삼매를 이루기 어렵다. 아미타불만을 염함은 곧 일상삼매(一相三昧)이니 마음이 전일하므로 그 국토에 왕생하게 되는 것이다.

화엄경에 『모든 부처님의 몸이 곧 한 부처님의 몸이다.』 하였으니 한 부처님이 곧 한 부처님이니 법신은 둘이 없는 까닭이다. 그래서 지극하게 한 부처님을 염할 때 곧 모든 부처님을 염하는 것이 된다.

    제4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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