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정, 그대로가 진정 불심이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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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정, 그대로가 진정 불심이었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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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5.0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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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바이 만세 여성불자 만세!

'동산양개(洞山良介807~869)'하면 조동종(曹洞宗)의 개산조로써 청원행사(靑原行思)의 제4대 법손인 운암담성(雲岩曇晟)의 법을 이은 대종장이다. 그의 성은 유(兪) 씨요 시호는 오본대사(悟本大師)며 탑호는 혜각(慧覺)이다. 호가 동산(洞山)이고, 양개는 그의 휘다. 오예산 진묵스님을 은사로 하여 머리를 깎고 사문이 된 그는 스물 한 살에 구족계를 받고 여러 곳으로 다니다가 남전보원을 만난다. 그 뒤 다시 위산영우에게 갔다가 위산의 지시를 받고 는 운암담성을 배알하게 된다. 운암담성은 동산에게 무정(無情)이 설법한다는 내용으로써 시험한다. 그는 거기서 선지(禪旨)를 깨달아 마침내 운암담성의 제자가 된다.

 당나라  대중 말년에 신풍산에서 많은 학인들을 제접하니 그에게 가르침을 구하는 납자들이 구름같이 몰려 들었다. 그 후 예장의 동산 보리원에 자리를 옮겨 종풍을 선양하니 비로소 그의 명성이 천하에 알려지게 되었으며 동산이란 호도 거기서 시작된다. 당나라 함통 10년에 입적한 그는 어록(語錄)이 1권 전해지며 그 문하에 운거도응, 조산본적, 소산광인, 청림사건, 용화거둔, 화엄휴정 등이 있는데 모두 당대를 이끌어간 대종장들이다. 조동종이 생기게 된 것도 제자 중의 한사람인 조산본적의 '조'와 동산양개의 '동'을 따서 이루어진 것인데 일본의 정법안장을 저술한 도오겐(道元)선사도 바로 이 조동종의 가풍을 이은 분이다. 그만큼 조동종은 매우 폭넓은 인재를 발굴하면서 발전되어져 갔고 또한 그 종지에 대해서도 학인들은 깊은 관심을 갖고 매료되었던 것이다.

 이처럼 훌륭한 대종장인 동산양개가 탄생된 배경에는 이름없는 한여인이 있었으니 바로 그의 어머니였다. 일찍이 회계의 유 씨에게 시집온 그녀는 온갖 역경과 가난을 딛고 아들 삼형제를 고이 길렀다. 그중에서도 둘째 아들인 동산양개에게 거는 기대는 대단하였다. 큰아들과 막내아들은 너무도 가난한 데다 둘째 아들만큼 총명하지도 못했고 또한 사람이 무던치를 못했다.

 남편도 없이 혼자 몸으로 길러낸 삼형제 중에서 특히 가장 기대를 걸었던 둘째가 출가를 하고 보니 그녀의 가슴은 메어지는 듯 했으리라. 아들이 보낸 편지에 답한 그녀의 답전문을 보자.

 "내 너로 더불어 숙세의 인연이 있었던지, 비로소 어미와 자식으로 맺어지자 온갖 사랑의 정을 다했더니라. 임신하고부터 신과 부처와 하늘에 기도하여 아들 얻기를 원했더니 만삭이 되고나서는 죽을 고비를 넘긴 게 한 두 번이 아니었었구나. 마침내 아들을 낳아 원을 성취하고는 금지옥엽처럼 아끼고 사랑하여 똥오줌의 더러움을 싫어하지 아니하고, 젖을 먹일 때에도 피곤한 줄을 몰랐더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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