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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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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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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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탐방/재중불교가수 김태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 있거늘

무얼 그리 갈래갈래

깊은 산속 헤맸나

밤벌레의 울음계곡

별빛 곱게 내려 앉나니

그리운 마음

님에게로 어서 달려 가보세

  가수 김태곤씨가 부른 '송학사'의 노랫말이다. 1978년에서 1980년 사이에 가장 유행했던 대중가요 중에 하나였던 이 노래의 주인공 김태곤씨는 노래를 통해 불교를 포교하는 대중불교 가수로, 우리의 얼과 혼을 그대로 담아 부르는 토속적인 대중음악 가수로도 유명하다.

  그의 노랫말과 노래풍, 그리고 한복이 잘 어울리는 그이 외모에서 풍기듯 그는 꾸밈없이 자연스러운 한국인이다. 철저히 우리의 것을 지키고 우리의 것을 창출해 내면서도 국수주의나 민족주의에 빠지지 않고 세계적인 것을 지향한다.

  그래서 악기와 운율도 우리의 것만을 고집하지 않고 그의 노래에는 서양의 것도 자연스럽게 등장한다. 그래서 그런지 세간 사람들은 그를 '무언가 있는 듯한 가수'로 본다.

  때로는 대금과 피리를 불며, 혹은 꽤과리와 목탁을 치며, 혹은 기타를 들고 나와와, 또 때로는 사물놀이패와 함께 '송학사' '망부석' '아리 아리 아라리오' '아야 울지마라'  '들국화'' 행글라이더' 등 많은 곡을 대중앞에 선 보이던 김태곤씨.

  요즈음 몇해 동안 활동이 뜸해 소식이 궁금하던 터에 지난 연말경 불광법회 15주년 기념행사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 날 그의 데뷔곡인 '송학사'를 시작으로 요근래 몇 년 동안 만든 찬불가와 명상곡인 '일출봉' '님의 숨결' '공 그리하여 열반' '아제 아제 바라아제' 등을 들으면서 김태곤씨의 또 다른 세계를 보는 듯 싶어 진한 김동을 느꼈다.

  뭐라고 할까. 모퉁이를 바로 돌아 송학사를 발견하고 이제는 마음의 때마저도 벗어버리고 피안에 올라 그 기쁨을 노래하고 있다고나 할까. 그만큼 그의 노래는 우리의 본래 면목이 그러하듯 따뜻하고 우리의 본래 면목이 그러하듯 따뜻하고 경쾌했다. 그리고 저절로 박수를 치며 누가 시키지 않아도 후렴을 따라 부를 정도로 신이 났다.

  6년전 교통사고로 가수활동마저도 중단해야 했지만 그동안의 역경과 고난은 오히려 그를 다시 태어나게 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또 이처럼 좋은 찬불가가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불리워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김태곤씨를 찾았다.

  불기 2528년 당시 총무원장이셨던 강석주스님으로부터 전법사 품수를 받아 포교사로도 활동해왔던 김태곤씨가 불교와 인연을 맺은 것은 '송학사'를 부르면서 부터였다고 한다.

  "그러니까 제가 24살 때였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 때는 제가 군복무를 하고 있을 때였는데 부대 주위에는 거치른 들판이 있었고, 특히 무덤들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밤이면 뻐꾸기들이 우는 산이 있었고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곳에는 민가가 있었지요. 그림을 그리자면 이렇습니다(자신이 서있는 바로 앞에는 무덤이 있고 오른편에는 민가가 있고 왼편에는 산이 있는 그림을 그려 보여준다) 그 날도 보초를 서는 날이었는데 총을 들고 서서 무덤을 바라보고 있노라니까 갑자기 내가 지금 왜 이 자리에 이렇게 서있는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왜 이 총을 들고 있으며, 무엇을 막으려고 서 있는 걸까. 그리고 저 무덤은 나에게 어떤 의미를 주는가 등등 의문이 줄지어 떠올랐습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 많은 생각을 하다가 얻어진 마지막 결론이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가 있다'는 것이었지요. 제가 궁극적으로 찾고자 했던 이상향은 갈래갈래 헤매어야 하는 깊은 산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초가삼간에서 나와서 생활의 터전인 논밭을 지나 산속으로 돌아가는 바로 산모퉁이에 있다는 것이었지요. 이러한 결론을 노래로 만든 것이 송학사였고, 그 인연으로 불교공부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원래 대학에서는 미술(요업공예과)을 전공했던 김태곤씨는 음악보다는 미술에 훨씬 더 관심이 많았고, 우리나라 흙과 물로 빚어 만드는 도자기가 그렇게 마음에 와닿을 수가 없었다고 한다. 좋은 도자기를 만들고자 이 지방 저 지방, 이 산 저 산을 찾아다녔던 그동안의 느낌과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몸에 배어왔던 불교, 그리고 그 날의 그 느낌이 한데 어우러진 결론이 바로 '송학사(松鶴寺)'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어디에나 있는 소나무와 그 소나무위에 상징처럼 떠오르는 학을 넣어 송학사라 이름한 것이다. 불교에 대해 전혀 몰랐던 그가 송학에다 절 사(寺)를 붙인 것은 절이 주는 포근하고 따뜻한 느낌때문이었다. 산모퉁이 바로 돌아 송학사가 있다는 것은 그동안의 그의 삶을 통해 잉태된 지극히 자연스러운 결론이었는지도 모른다.

  그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불교를 공부한 지금은 그 송학사가 의미하는 것이 열반이었고 우리의 이상이었으며, 산모퉁이를 바로 돌면 있다고 하는 것은 이러한 이상이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우리의 삶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생과 사의 두 극단이 아닌 중도(中道)에 위치함을 알게 된 것이다.

  아무튼 자신도 모르게 '송학사'를 지어 노래부르게 되고 노래부르면서 다니다 보니 특히 불자들이 이 노래를 좋아해주었다. 그러다 보니 자연 불교에 대해 관심을 가지게 되고 절을 찾게 되었다. 절을 찾고 스님들의 설법을 들으면서 얻은 또 하나의 결론은 불교만큼 좋고 완벽한 종교가 없다는 것이다. 아니 완벽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근본적이기 때문에 따로 말할 것도 없다는 결론이다.

  "제가 불교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한 때는 주로 불교철학적인 것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불교를 점차 공부하다 보니 어느 순가 불교 신앙인으로 바뀌었습니다. 글쎄요. 비유를 하자면 자식이 어머니 품에 내내 있다가 어머니 품을 떠난 뒤 문득 어머니의 사랑을 아는 것처럼 저도 어느 순간 문득 신앙의 문으로 들어가게 되었다고나 할까요. 이렇게 불교 신앙인으로 바뀌자 봄의 미풍처럼 잔잔한 미소가 저를 감싸는 듯 했고 환희심으로 할 말도 많아졌습니다. 예를 들자면 불교에서 말하는 공(空)의 세계는 표정도 없이 무덤덤한 상태가 아니고, 보다 적극적이고 활기에 넘치며 따뜻하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이러한 것들을 노래를 통해 전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고민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우리 불교적인 분위기를 깨뜨리지 않으면서도 활달하고 현대적인 찬불가를 만들고 부를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5 ~6년 전부터 찬불가를 만들어야겠다고 마음을 낸 김태곤씨의 가장 큰 고민은 '부처님의 정신을 어떻게 노래로 담을 것인가'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좀 더 불교를 확연히 알아야겠기에 본격적으로 불교공부를 시작하면서 스님들을 자주 찾아뵙기도 했다. 이렇게 하고나자 지난해부터 마침내 봇물터지듯이 찬불가를 작사 작곡하게 되었고, 올해 쯤에는 그 곡들이 실린 음반을 낼 예정이다.(이 음반에는 대중가요 몇 곡과 찬불가들이 주로 실릴 것이다).

  이 음반에 실릴 '공(空) 그리하여 열잔'은 '송학사'의 후속곡으로 청소년들을 위해 만든 곡이다. 요즈음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 청소년들의 심성을 바로 잡아주고, 연약한 마음의 심지를 심어주고자 만든 곡이다. 기 곡은 청소년들이 좋아하는 전자기타연주와 중간에 반야심경을 넣어 만들었다. 그리고 이 곡보다 좀 더 쉬우면서도 차분한 노래가 '일출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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