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밖 죽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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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밖 죽문
  • 관리자
  • 승인 2009.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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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샘

산길 처럼 피어 오르던 저녁연기... . 그리고 맑은 노을. 3월이면 매서운 겨울 북풍이 완전하게 물러난 것은 아니지만, 마음에서 이십 리 너머의 학교는 문을 열었었다. 한창 물이 오른 버들강아지 늘어 선 개울과 맑은 저수지, 밤나수 숲을 차례로 지나 어깨에 책보따리를 맨 열 살 남짓의 소년, 소녀들이 마을로 들어서고 있었다.

마을 입구의 대나무 언덕이라는 이름의 ‘ 동구밖 죽문’ 변덕스런 바람에 흔들리며 울고 있는 대나무들과 웃고 있는 아이들... . 그러면 어김없이 진달래가 피고 늘 찔레순이 돋았다. 푸른 보리밭과 밀밭 가득. 그러나 그띠부터 하나 둘 책보따리 보다 커다란 짐을 들고 동무들이 떠났고, 떠나는 동무들을 눈물로 바라보던 나도 서울로 서울로 가는 기차를 타고 말았다.

내가 마지막 고향을 떠나오던날, 저희들 엄마 치마폭에 얼굴을 가리고 울고 있는 계집애들과 괜스레 빈 들판에 돌멩이를 집어 던지던 동무들, 그 앞에서 나는 서울로 간다고 자랑스러운 듯이 웃고 있었다. 그것이 다시는 돌아오지 못할 여행인 줄도 모르고.

그리고 서울로 온 지 일주일이 채 가기도 전에 나는 병이 들고 말았다. 꼭 깡통집 같은 남의 집 곁방. 우리 집으로 가자고 울고불고 난리를 치는 내게 아버지는 매를 들었고, 나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 대신 거의 39년동안 죽문 앞 대나무소리를 내 가슴에 묻었다. 나이테 같은 동그라미 속으로 사라져 버린 그 오랜 옛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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