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게, 오줌은 이렇게 누어야 하는 걸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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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게, 오줌은 이렇게 누어야 하는 걸세!
  • 관리자
  • 승인 2009.04.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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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 / 고암 스님의 제자 선효 스님
고암 스님(고암대종사법어집 『자비보살의 길』)

남한산성 개원사로 가는 길, 산빛에 봄물이 들어가고 있었다. 푸르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부드럽고 촉촉했으며 따뜻하지 않아도 온화했다. “봄이죠?” 개원사 마당 앞까지 마중 나온 선효 스님은 그렇게 첫말을 건넸다. 짧지만 강렬한 인사였다. 무엇보다 선효 스님의 미소가 특별했다. 근래에 이토록 활짝 웃는 미소를 본 적이 있었던가 싶을 정도로 스님은 온 얼굴로 웃음 짓고 있었다. 스승이었던 고암 큰스님의 잔잔한 미소와 어딘가 닮아 있는 듯했다.

“그럴 리가요. 우리 스님 발끝도 못 닮았습니다. 오히려 저희 스님이 저를 길들이느라 얼마나 고생을 많이 하셨는지 모릅니다. 제가 젊어서는 성격이 거칠고 욱해서 말썽을 많이 부렸거든요. 그러면 스님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항상 불러요 ‘이보게!’ 하고 말이죠.”

선효 스님은 무언가에게 걸린 듯, 하던 말을 끊고 ‘이보게!’라는 말을 한참 되뇌었다. 고암 스님이 늘 부르던 말이었다고 했다. 잘못했을 때, 말썽 피웠을 때, 밥을 못 지었을 때, 그리고 공부를 게을리 할 때면 큰스님은 누가 들을까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이보게! 자네 어째 이러나. 수행자가 어찌 그리 행이 거칠단 말인가.” 하며 마음을 가다듬어 주곤 하셨다고 한다. 어디 그뿐인가. 고암 스님은 오줌 누는 법까지도 선효 스님에게 가르쳐주었던 특별한 스승이었다.

“어느 날인가 저를 데리고 해우소로 가시더니 ‘이보게, 이제 자네랑 나랑 같이 오줌을 누세나. 소변 볼 때는 여기저기 동네 구경하지 말고 바지춤을 잘 잡고 조준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네, 그리고 소변을 다 보았을 때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지 말고 단정하게 옷을 여미고 나서야 하네. 앞으로도 오늘처럼 그리 할 수 있겠는가?’ 하시는 거예요. 하하하. 지금 생각해도 송구스러운 일이었지만, 고암 스님은 그렇게 다정하고 조용하시고 겸손하셨던 스승이셨습니다.”

말끝을 내리며 선효 스님은 예의 그 환한 미소를 지어보였다. 부서지는 잔잔한 미소 사이로 애틋한 그리움의 흔적이 묻어난다.

세 차례 종정에 올랐던 고암 스님 _____ 해우소에서 두런두런 이야기 나누는 사제의 모습이라니, 상상만 해도 웃음이 묻어나는 풍경이요 아름다운 풍경이 아닐 수 없다. 특히나 고암 스님이 누구이던가. 한 번도 하기 어려운 지고지엄한 종정 자리에 세 번이나 추대되었던 당대 최고의 선지식이요, 그러면서도 당신 절 하나 소유하지 않고 늘 떠나는 삶을 살았던 어른이 고암 스님이었다. ‘무소유, 무집착, 무차별’은 스님이 오늘에까지도 자비보살의 화현으로 기억되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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