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만해의 시와 보살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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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만해의 시와 보살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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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9.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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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 ∙ 한용운사상의 원천

1. 찬란한 민족의 별

  

파란 많은 가시밭 길을 걸어 온 우리 근대의 역사는 그 흐름의 강 기슭을 비춰준 수많은 민족의 성좌(星座)들로 인하여 어둠 속을 헤치고 밝고 힘찬 전진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 성좌 가운데에서도 가장 찬란한 민족의 별이 바로 만해 한용운 스님이었습니다. 실로 우리가 우리의 역사 속에서 만해 한용운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우리 민족의 자랑이요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만해는 누구나 아는 바와 같이 어느 한 부분의 인물이 아닙니다. 우리 불교사에 우뚝 솟은 높은 스님이었고, 조국 광복을 위해 피나는 투쟁과 대쪽 같은 지조를 지킨 민족의 선각자이었으며, 아름답고 고운 사랑의 노래를 부른 시인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 세 가지 부분에서 크게 성취한 전인적인 인물이었습니다. 만해로 인하여 우리 불교는 새로운 바람을 일으켰고, 깊이 있는 불학(佛學)을 개척하였으며, 유심현묘(幽深玄妙)한 선(禪)의 세계가 더욱 새롭게 열렸습니다. 그리고 만해로 인하여 투철한 주체적 민족의식의 자각을 이룩하였고, 잠자는 민족적 양심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또 만해로 인하여 우리의 문학사는 찬란한 빛을 발할 수 있었습니다.

만해는 흔히 인도의 시성(詩聖) 타고르와 비교되기도 하고, 인도의 독립투사 간디에 견주기도 합니다. 그러나 만해의 시를 깊이 연구한 송욱 교수는 타고르와 간디를 합쳐도 우리 만해만은 못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사실입니다. 타고르는 시인일 뿐이었고, 간디는 독립지사였을 뿐입니다. 그러나 만해는 시인에다 독립지사를 겸하였고, 그 위에 심오한 불교학자였고 고매한 선승(禪僧)이었기에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시인과 지사와 선승, 이 세가지를 높게 성취하고 이 세가지를 원만하게 지닌 이가 만해였기에 이 세가지 측면을 알지 않고 만해를 올바로 알 수는 없습니다. 그러기에 만해를 말한다는 것은 범속한 속인으로는 아주 어려운 일입니다.

이 글은 이상 만해의 세가지 측면 중 시인으로서의 만해에 대하여 간단히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만해의 시라 하더라도 만해의 불교적 인생관 그리고 불교사상과 밀접한 관계에 있기 때문에 만해의 시에 나타난 불교적 측면을 동시에 말하지 않을 수 없음을 미리 이야기해 두고자 합니다.

2. 님의 정체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만해는 시인 ∙ 지사 ∙ 선승을 겸한 이였고, 또 이 세가지 면이 일체화된 인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그 밑바탕이 되는 것은 불교인으로서의 만해였습니다. 즉 시인 ∙ 지사 ∙ 선승이라는 삼각형의 저변(底邊)을 이루고 있는 것은 불교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만해의 인생관에 일찍부터 뿌리 박은 불교적 체험과 사상은 그의 모든 분야의 원리가 되었고, 그의 모든 언행의 강령이 되고 있습니다. 그의 조국과 민족에 대한 사랑, 그리고 빼앗긴 조국을 되찾고 억압받는 민족을 일으켜 세우기 위한 피나는 노력과 굳은 절개도 그의 불교적 인생관에서 우러나온 것이었고, 그의 곱고 아름다운 사랑의 시도 역시 불교적 사상을 바탕으로 불려진 노래였습니다. 따라서 만해의 모든 것은 모두 불교에 귀일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봅니다.

만해의 시는 모두「님의 노래」라 할만큼 그의 시에는「님」이 나옵니다. 곧바로「님」이 안 나온다 해도「당신」이니「애인」이니 하는 것이 모두「님」에 해당되는 말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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