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스님 석전 박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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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스님 석전 박한영
  • 관리자
  • 승인 2009.04.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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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의 학인시절

  * 삼매 속의 일상생활

 앞서 펜을 들면서 한 말 했듯이 나는 석전 산에서 20년을 살았지만 아직 산을 보지 못한 느낌이다. 나는 여기에서 내가 모시고 지내던 동안에 내 눈에 비친 면모를 생각나는 대로 두서없이 적어 보고자 한다.

우선 우리 스님의 일상생활은 어떠하셨는가? 우리 스님은 병인년에 개운사에서 강원을 열고 기사년에 대원암에 불교연구원을 설립한 것은 앞서 말하였거니와 그전에 무진년(1928년) 3월에는 불교전수학교가 설립되었던 것이다. 그리고 내가 중이 되던 경오년(1930년)에는 불교전수학교가 전문학교로 승격되어 중앙불교전문학교가 되어 있었다. 말하자면 내가 우리 스님을 모신 때는 대원강원 조실이셨고 중앙불전 교장이었다.

 우리 스님은 아침 3시에 일어나셔서 참선을 하셨고 역시 주무시기 전 9시부터 1시간은 입정시간이었다. 아침 공양 후는 학인들을 지도하시고 문강이 끝나는 것은 대개 11시다. 그 시간에 우리 스님은 학교로 나아갔다, 개운사 서쪽 산 고개를 넘어서 동소문 밖 벌을 지나 지금의 명륜동에 있던 학교에 걸어서 가셨다. 아마도 그 거리는 4kn가 넘지 않나 생각이 된다. 돌아오시는 것은 오후 5시 또는 6시경인데 역시 산을 넘어 걸어 오셨다. 말하자면 아침부터 밤까지 한결 같은 이런 일과의 반복이었다. 그 밖에 낮 시간을 언제나 책을 들고 앉으셨다. 손에서 책을 놓는 것은 방세서 별로 드물다.

 내가 스님을 모신 것은 스님이 회갑을 지낸 이후부터였는데 독서와 집필은 깨어있는 시간의 전부인 듯이 보였다. 그만큼 많이 읽으셨고 책도 많이 구하셨던 것이다. 주무실 때는 평상시 입던 옷 그대로 주무셨고 겨울에도 이불이 없었다. 평생을 요 하나 담요 하나로 단촐하게 지내셨다.

우리 스님은 되도록 당신 스스로 하시고 당신의 독서환경을 어지럽히는 것을 못마땅해 하시는 듯 보였다. 무엇인가 돌봐드리는 것을 번거로워 하셨다. 예를 들면 종일 방에서 책 보시고 글 쓰셔서 방을 정돈해 드릴 틈이 없었다. 아침 세수하시러 나오신 시간에 나는 번개 같이 방을 청소하여야 했다. 스님께서는 될 수 있는 대로 다른 사람의 손이 안가도록 마음을 쓰셨으며 또 중은 마땅히 매사를 자기 스스로 하여야 한다고 믿고 계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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