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절(忠節)과 음영(吟詠)의 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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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절(忠節)과 음영(吟詠)의 고장
  • 관리자
  • 승인 2009.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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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라밀 국토를 찾아서 ·담양군

'담양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대나무와 그것으로 여러가지 죽세공품을 만드는 고집스런 장인들을 떠올린다. 인간은 환경에 적응하고 또 닮아간다고 했던가. 그래서 담양인들은 어떤 덕목보다 곧은 충절(忠節)에 그들의 삶의 가치를 기대며 살아 왔다. 임진란의 전화 속에서도, 구한말 호남 의병의 활약 속에서도, 또 독립운동에서도 담양은 인근 타지역을 포괄하는 대표적인 장소로서 역할을 다 해왔다.

 담양은 남으로 해남, 고흥, 여수, 순천 등의 도서지역들과 북으로 전북의 남원, 순창 등을 잇는 요충의 자리에 자리잡고 있어 일찍이 담양도호부 관아가 있던 곳이다. 남도의 젖줄인 영산강이 발원하는 곳이요, 서남향을 제외한 사면 거의 모두가 호남의 명산들에 에워싸여 풍류를 아는 명사들이 음풍농월(吟風弄月) 잔을 기울이며 노래를 불렀음직한 정자(亭子)들을 곳곳에서 볼 수 있기도 하다.

 우리나라의 처처(處處)마다에는 그곳이 사람이 살았던 곳이라면 반드시 불적(佛跡)이 있다. 그것이 밭두렁에서 발에 채이는 와당조각으로 남아 있든지, 순박한 백성들이 불법을 받들고 신봉했던 바라밀 국토임을 고스란히 상징하는 사찰, 석탑, 석불, 사지(寺趾) 등이 전국에 걸쳐 없는 곳이 없다. 그것은 이곳 풍치 좋은 담양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순창쪽으로 난 길을 따라 담양읍을 벗어나는 경계를 이룬 곳에는 길의 좌우에, 이곳이 그리 멀지 않은 과거에 사찰터였음임을 증명하는 상징물이 서 있다. 각각 보물 505, 506호로 지정된 석당간과 5층 석탑이 그것이다. 두 유물은 다 보존상태가 좋아서 원형을 그대로 갖추고 있지만 이곳에 있었을 사찰에 대한 기록은 어느 곳에서도 찾아보기 힘들다. 사찰터였을 이곳은 왕복 2차선 도로가 두 군데나 나있고 나머지는 논밭으로 변해버렸다. 또, 이 유물들도 밭두렁과 한길가에 외따로 보존만 되어 있을 뿐이지 사람들의 관심을 끌도록 힘쓴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거의 방치와 다름없는 수백 년의 세월을 버텨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신비로운 이 5층 석탑과 석당간은 각각 고려와 조선의 양식들을 대표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5층석탑은 멀리서 볼 때 마치 부여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보는 것처럼 흡사하게 닮아서 백제 계열의 석탑양식이 고려에까지 남아 있었음을 보여준다. 높이 7미터 중, 기단부가 초층 옥신보다 좁아서 안정감이 없어 보이나 각층으로 올라 갈수록 알맞은 체감률을 이루어 전체적으로 볼 때 균형을 잃지 않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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