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리(名利)를 떠난 참 수행자 석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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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리(名利)를 떠난 참 수행자 석암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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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7.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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흠모 / 석암 스님의 제자 인환 스님

세수 78세, 인환 스님이 부려온 세월이다. 그림자가 길게 늘어지는 황혼의 시간, 그러나 스님은 여여했다. 예의 지어보이는 함박웃음엔 여전히 맑은 소리가 터져 나왔고, 알사탕처럼 동그란 눈빛엔 재미난 이야기들이 넘실거리는 듯했다.

격의 없는 모습, 인환 스님을 친견했던 이라면 누구나 선하게 떠오르는 모습일 것이다. 주변 살림은 또 얼마나 단출한지, 법랍 57년 세월이 무색할 정도이다. 당신 절도 지닌 바 없고, 차는 물론이요 시봉하는 시자도 없다. 한 달 내내 강의하랴 법문 하랴, 그리고 참선 지도까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일정을 소화해내면서도 스님은 걸망 외에 그 어느 것도 소유하지 않았다. 차가 없으니 건강에 오히려 좋다 여겼고, 강단에 서면서 법을 전하는 일 외에는 어디에도 안착하지 않겠다는 뜻을 세웠으니 절을 가질 이유 또한 없었다고 했다. 전국 어디서든 대중이 부르면 달려가고, 그렇게 해서 대중의 묵은 잠을 깨울 수 있다면 그것으로 스님은 족했다.

“저는 오랫동안 강단에 서 왔고, 지금도 법상에 올라 부처님 법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명리를 떠나 있어야 해요. 명리를 떠나 있어야 세상 사람들의 스승이 될 수 있고 부족함 없이 마음껏 줄 수 있는 법이거든요. 일찍이 석암 스님에게서 그 도리를 보았고, 저 또한 그 길을 따라 가고 있는 것입니다.” 50년대를 거친 스님 중에서 석암 스님으로부터 계첩을 받지 않은 이가 없을 정도로 유명했던 수계율사(受戒律師) 석암 스님이 바로 인환 스님의 법사스님이었다. 창공이 무색할 정도로 삶과 수행이 청정했고, 대중을 보살피는 자비로움은 어머니와 같았다고 후학들은 지금도 은사를 떠올리면 마음이 축축하게 젖어든다고 했다.

“석암 스님은 일부러 짓는 행위도 마음도 없는 어른이었습니다. 마음 가는 대로 행 가는 대로 그 모든 것들이 부처님 가르침과 계합되었거든요. 그러면서도 참 자비로우셨어요. 1952년 무렵, 다들 얼마나 어려운 때입니까? 그래도 스님 계시던 부산 선암사만은 어려운 줄 모르고 대중들이 공부했습니다. 석암 스님은 부지런히 탁발해 대중의 허기를 채우고, 부족한 것은 스님의 덕화로 다 채워주셨거든요. 그러면서도 당신을 앞에 내세운 적이 한 번 없으셨습니다. 늘 뒤에서 외호할 뿐 어떤 경우에도 명리를 추구하지 않았던 참 수행자였습니다.”

전란 중에 만난 불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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