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꽃피는 봄 날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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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화 꽃피는 봄 날에
  • 관리자
  • 승인 2008.05.23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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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어유희[禪語游戱] 3

전신응시명월 (前身應是明月)_ _ _ _ 내 전생에는 밝은 달이었지

개생수도매화 (幾生修到梅花)_ _ _ _ 몇 생이나 닦아야 매화가 될까

조선 중기 성리학의 대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은 매화를 무척 좋아했다고 전한다. 매화를 주제로 한 시가 백여 편에 이르며, 단양군수로 부임했을 때 기생 두향(杜香)이 연모의 증표로 준 청매화를 21년 동안 애지중지 키울 정도였다. 물론 둘 사이의 애틋한 로맨스가 기본에 깔려 있다. 그리고 좌탈(坐脫)하면서 마지막 유언으로 “매화에 물 주어라”고 하였다니 수행자로서 뿐만 아니라 매화 매니아로서도 전혀 손색이 없는 어른이었다. 그래서 몇 생을 거듭하더라도 언젠가 매화로 환생하길 발원했던 것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신흠(申欽, 1566~1628)은 그의 저서 『야언(野言)』에서 “매화는 평생 추워도 향기를 팔지 않는다(梅一生寒不賣香)”는 명언을 남겼다. 아마도 이 말은 꼬장꼬장한 선비들이 기개와 지조를 지키면서 살아갈 수 있는 좌우명 구실을 했을 것이다. 지금은 고인이 된 교보문고 창립자 신용호 회장과 수필가 피천득 선생도 항상 이 구절을 곁에 써 놓고 애송하면서 삶의 지침으로 삼았다고 한다. 황벽 선사는 여기에 더하여 “뼛속을 사무치는 추위 없이(不是一륙寒徹骨) 매화향기가 코끝 찌름을 얻을 수 없다(爭得梅花撲鼻香)”고 한 바 있다.

남송의 유학자인 나대경(羅大經)이 지은 『학림옥로(鶴林玉露)』 권6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비구니의 오도송이 기록되어 있다. 여성수행자 특유의 섬세함이 충분히 느껴지는 이 아름다운 시에서 매화는 깨달음의 매개체인 동시에 깨달음의 내용이기도 하다. 봄(깨달음)을 찾아 밖으로 헤매다가 결국 찾지 못하고 지쳐서 돌아오니, 집 뜰 안에 핀 매화를 보고서 비로소 봄이 왔음을 알았다는 내용이다. 깨달음은 밖에서 구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내 안에 갖추어져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매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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