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羅九山禪門址에 대한 나의 생각
그동안 전호(前號)까지 여러 차례에 걸쳐 신라시대의 구산선문의 옛터를 살펴 보았다. 이제 九山의 선문도량지를 두루 찾고 보니 서글픈 생각이 앞서 여기에 끝맺음으로 몇가지 필자의 안타까운 심정을 털어놓고 싶어서 지면을 빌었다.
九세기에 들면서 우리사회에는 선종이라는 새로운 종풍이 일어 당시 설악산 진전사의 장로인 도의선사를 종조로 모시고 二代 염거화상, 三代 보조선사로 선종을 크게 일으키는 한편 전국에 아홉곳의 근본 대도량을 설치하였으니 이것을 곧 구산선문이라 일컬으며 이 구산의 대도량이 곧 당시 신라의 불교를 대표하였음은 가히 짐작되는 일이라 하겠다. 그러므로 이들 구산의 도량은 각기 그 지방의 근본대도량으로서 특출한 문인이 끊일 사이 없고 따라서 많은 불도들로 크게 번성한 면모를 갖추었던 것이니 오늘날 각 선문지에 남아있는 웅대한 석축 법당지와 많은 석조미술품 등으로 미루어 알 수 있는 바다.
월간불광 과월호는 로그인 후 전체(2021년 이후 특집기사 제외)열람 하실 수 있습니다.
저작권자 © 불광미디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