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화경과 보현보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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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화경과 보현보살
  • 관리자
  • 승인 2008.01.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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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교양강좌

. 1.악을 깨닫다.

법화경의 골격이 되는 두 개의 기둥이 있다. 그것은 「즉신성불(즉신성불)」과 「사바세계가 곧 불국토 」라는 것인데 법화경에는 문수보살. 미륵보살. 보현보살 등이 나타나 부처님의 설법을 돕고 있다. 그중에 보현보살의 활약하는 의미에 대해서 나는 근일 깊이 느끼는 바가 있다. 첫째 법화경에는 많은 오해가 있었다. 이 몸으로 곧 부처가 된다는 즉신성불이라는 말의 큰 의미가 있는 것을 등한히 했던 것이다. 언젠가 나는 일념삼천이라는 법문에 대하여 질문을 받았었는데 그때 나는 일념은 일순간의 마음이다. 삼천이라 하는 것은 극대의 가능성을 보인 것이다. 이 일념 속에 삼천의 세계가 깃들어 있다는 공식적인 설명을 한 적이 있었는데 내 나이 팔십이 되고 보니 그 법문의의미를 좀더 깊이 생각하게끔 되었다. 분명히 부모에게서 받은 이 몸을 가지고 부처가 된다고 하는 것은 틀림없지만 그와 동시에 우리들 인간은 지옥. 아귀. 축생에 떨어질 가능성이 있다는 의미도 전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런 인식이 없고서는 즉신성불이니, 사바세계가 곧 불국토니 하고 말할수록 그 반면에 인간은 또 다른 약점이 있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금 옛 성인들이 보현보살을 중히 여긴 뜻이 알만 해진다. 보현보살은 참회를 설하는 보살이다. 만약 참회를 뺀다면 보현보살의 존재이유는 없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이 참회는 육근청정이라는 것이다. 육근청정이라 하는 것은 눈이나 귀와 코가 청정하다는 뜻이지만 결국은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새로 태어나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생각하기를 보현보살의 가르침은 우리 인간에게 참회를 가르칠 것이라 생각한다. 참회라 하면 천주교에서 신자가 참회를 하면 신부가 그것을 용서한다고 하지만 불교에는 누구든 인간에 대한 심판자는 아니므로 용서한다는 것은 없고 따라서 신이라는 개념도 없다. 신이라 하는 것은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존재이므로 인간이 아무리 진보 향상하더라도 신은 될 수 없는 것으로 되어있다. 이런 의미에서 신은 절대타자이고 그 입장에서 인간을 심판하는 것이다. 인간생활이 불완전한 것을 악인, 또는 약자라고 한다. 살인이나 도적질한 것만이 악인이 아니고 불보살에 비교하여 자기가 불완전하다는 마음이 악이라는 말 가운데 있는 것이므로 여기서 중요한 것은 자기가 그런 악인이라는 자각은 불보살의 훌륭한 행위나 말씀에서 알게 된다. 그것을 모르면 참회심이 날 리가 없다. 참회라 하는 것은 다만 죄를 고백하고 사과할 뿐만 아니라 지금까지의 자기생활이 불완전한 것을 인정하고 앞으로는 잘못이 없는 생활에 들고자 맹세하고 발원하는 것이다.

2.모두에 이어지는 것

그러면 불교도의 서원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보살의 사홍서원으로서 「중생무변서원도. 번뇌무진서원단. 법문무량서원학. 불도무상서원성 」으로서 이것을 일상생활에서 실행하는 것이다. 불보살의 훌륭한 행에 자기도 가까와지고자 하는 이상을 세워 그 이상을 실현할 노력이 없다면 이상은 한낱 공상이 되고 만다. 거기에는 구체적 노력이 필요한데 이상을 세우지 않는 행동은 망동이 된다. 공상과 망동을 떠나 이상을 실현하는 노력을 쌓아가는 것이 서원인 것이다.

여기서 참회라 하는 것은 자기 생활의 불완전을 인정하고 이제부터는 불보살님과 똑같은 생활을 하려고 서원하는 것으로서 거기에 참회의 의미가 있다. 문수보살은 지혜를 나타내지만 보현보살은 진리를나타낸다. 법화경 서품에 전개되는 세계는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온갖 중생들이 모여 있다. 그들은 경건히 합장한 모습으로 부처님을 우러러 본다. 즉 부처님을 중심으로 하여 유기적필연의 공존관계가 전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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