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산대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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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대사의 생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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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8.01.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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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II / 전통사상의 현재 (9) 서산대사

「 내 차라리 평생을 메텅구리 등신이 될지언정 결코 문자법사는 되지 않겠다.」 하였다.

학문과 이론에 얽힌 확자승이 되느니 보다 차라리 바보천치가 되겠다하였으니 이는 문자이

전의 본심을  파닥하고자 하는 장부의 대발심인 것이다.

 ① 탄생

 대사의 탄생에 대하여는 동사열전에 기록이 보인다. 대사의 어머니는 40 이 넘도록 자손을

얻지 못했는데, 47세가 되는 하루, 창가에서 졸고 있는데 비몽사몽간에 노파가 나타나서

「아들을 가진 것을 축하한다」고 하였다 한다. 이래서 중종 15년(서기 1520년)3월에탄생

하였다. 아버지는 완산 최씨 어머니는 김씨였다. 대사의 속명은 여신이라 하였고, 아명을 운

학이라하였다. 이 운학이라는 이름에 대하여도 역시 재미있는 일화가 전해온다 대사가 3세

가 되는해 4월8일 부친이 누각에서 졸고 있는데 역시 꿈에 나타나서 하는 말이 「어린 스

님을 찾아 뵈러 왔소이다」하고는 어린 아기를 안아 주면서 무슨 주문인지 몇 번 외웠다.

그리고는 「아기 이름은 운학이 좋겠습니다. 아기의 일생이 구름 속의 학과 같을 것입니

다.」하였다 한다. 이래서 운학 또는 소사문이라 불렀던 것이다.

 이런 인연을 가진 대사는 어렸을 때부터 기이한 데가 있어서, 흙장난을 하여도 탑을 만들

었고, 돌을 모아서는 절을 짓는다고 하였다. 그리고 부모님에 대한 효성심은 어른들을 놀라

게 했던 것이다.

 그렇지만 대사의 세속 인연은 쉬이 끝나기로 되었던 모양이다. 9살에 어머니를 10살에 아

버지를 잃었다. 고아가 된 것이다. 당시 안주목사 이사증이 한번은 불러서, 눈이 덮힌 솔을

가리키면서 글을 짓게 하였다.

 운자를 처음에는 사를 다음에는 화자를 불렀는데 각각 말이 떨어지기가 바쁘게 「香擬高閣

日初斜, 千里江山雪岩花 」라 지었다. 스님의 문장의 재능이 어떠하였는가를 보여주는 일화

이다.

 이를 인연하여 이 목사는 기뻐서 운학과 함께 서울로 들어갔다. 그때가 대사 12세이다.

 그리고 동대문 밖에 있는 서당에서 3년간을 수학하고 15세 때에 진사과에 응시하였더니

그만 낙방하였다. 이 낙방이 역사 위에 서산대사를 탄생께 할 인연인 것을 누가 알았을까?

대사는 울적한 마음을 안고 몇몇 벗들과 함께 유랑의 길을 나섰다. 호남지방으로 발걸음을

옮겨 지리산에 이르러 숭인 장로를 만났다. 숭인장로는 대사를 한번 보고 곧 법그릇 됨을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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