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아다미의 운전수와 광주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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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아다미의 운전수와 광주시민
  • 조갑제
  • 승인 2007.12.23 00: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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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마음이 있는 곳

 언제든지 애정을 갖고 추억할 수 있는 곳과 사람이 있다. 오랜 만남이 아닌 순간적인 만남이었는데도 눈을 감으면 떠오르는 얼굴과 정경이 있다. 내 몸은 이미 그들을 떠나 있어도 마음의 길은 항상 그곳으로 통하고 그들과 함께 있다.

 아다미〔熱海〕. 일본 소설의 배경으로 자주 등장하는 환상적인 이름의 이 온천도시를 찾은 것은 一九七五년 4월의 어느날 밤이었다. 이 해안 도시에서 낭만과 절경을 기대하며 찾아왔던 나는 크게 실망했다. 백사장은 시멘트 투성이의 건물과 도로에 점령당해 있었다. 4백 곳이 넘는 호텔과 여관이 몰려 있는 이 도시는 짙은 분냄새와 육욕의 분위기를 풍기고 있었다. 한 여관에 짐을 맡겨 놓고 밤나들이를 나온 나는 해안 도로를 한 바퀴돈 다음 여관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밤 12시께였다. 그 깜깜한 낯선 거리에서 나는 방향 감각을 잃고 말았다. 그제서야 나는 짐을 맡겨 놓았던 여관 이름을 기억해두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여관 전화 번호가 적힌 성냥곽이라도 갖고 나왔나 하고 호주머니를 뒤졌지만 그것마저 없었다.

암흑 속에서 4백이나 되는 여관을 뒤지고 다녀야 한다고 생각하니 등에 진땀이 났다. 그 여관의 기억을 되살리려고 2시간 동안 이리저리 헤매고 다녔지만 허탕만 쳤다. 나는 이제 도시의 미아가 돼버린 것이다. 마지막 수단으로 나는 그 여관을 찾던 길을 아다미 역에서부터 다시 더듬기로 했다.

택시를 잡아타고 운전수에게 딱한 사정을 털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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