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한거都心閑居] 그해 여름, 해인사(海印寺)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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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한거都心閑居] 그해 여름, 해인사(海印寺)에는
  • 석두 스님
  • 승인 2022.09.09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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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천 해인사 홍류동 계곡

도심의 습한 여름 더위는 사람들을 쉽게 지치게 한다. 스님들은 더 그렇다. 가사와 장삼의 무게감과 부피감은 일반인의 상상 이상이기 때문이다. 소승의 장삼은 며칠만 지나면 목덜미가 땀에 찌들어 노랗게 된다. 그리고 가사는 땀의 물기를 머금어 배로 무거워진다. 그래서 도심의 여름철은 스님들에게 환영받지 못한다. 여름철에 산속에서 혼자 살 때는 자유로운 복장(?)으로 편하게 지내곤 했다. 누구의 시선도 없는 곳이니 그리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수도승(首都僧)의 여름나기는 버겁다. 그래서 도시에 사는 소승은 여름철보다 겨울철이 더 좋다. 

여름을 떠올리면 초보 스님일 때가 기억난다. 해인사 강원으로 입방하러 가던 1999년의 대구의 여름이 선명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간 대구는 찜질방의 그 느낌이었다. 고속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숨이 턱 막히는 경험을 했다. 그래서 그해 대구의 여름은 강렬한 인상으로 소승에게 각인되어 있다. 더위에 지친 몸을 실은 낡은 버스는 해인사로 향했고, 마음은 강원 입방의 긴장감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버스가 가파른 홍류동 계곡에 들어서자, 그동안 불편하게 했던 불볕더위는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곳은 분명 신선들이 사는 무릉도원이었다. 

동풍일취과(東風一吹過) 

화락만계홍(花落滿溪紅) 

산출백운외(山出白雲外) 

승귀석조중(僧歸夕照中) 

동풍 한번 불고 지나가니

꽃 떨어져 계곡 가득 붉구나.

흰 구름 너머로 산이 우뚝 솟았는데

스님은 저녁 노을빛 속으로 돌아가네.

가야산 해인사 입구에 있는 홍류동 계곡의 풍취를 읊은 청허당 휴정(淸虛堂 休靜, 1520~1604) 스님의 선시(禪詩), 〈홍류동(紅流洞)〉이다. 선시는 때론 그냥 구름처럼 물처럼 흐르는 대로 읽어가면 된다. 그래서 느낌이 온다면 느끼는 대로, 청아하고 은은한 마음의 소리를 들으면 되는 것이다.

이 선시의 느낌이 딱 그렇다. 가을철에 홍류동 계곡은 말 그대로 온통 붉은 빛으로 물든다. 그 붉은 계곡 위로는 마치 촛불이 타오르듯이 가야산의 산봉우리들이 둘러싸고 있다. 위 시는 살면서 느꼈던 가을 해인사의 홍류동 계곡의 풍취와 정확하게 일치한다.

서산(西山)인 묘향산에 오래 주석하신 스님은 별칭으로 서산대사(西山大師)라고도 불린다. 평남 안주 출신이신 스님은 9세 때 어머니를 여의고, 다음 해에는 아버지마저 돌아가시는 불운을 맞이하게 된다. 어리지만 총명한 스님을 아낀 안주군수의 추천으로 12세에 성균관에 입학하게 된다. 15세에는 과거에 응시했으나 낙방하고, 지리산으로 들어가 부용 영관(芙蓉 靈觀, 1485~1571)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10여 년간 수행 정진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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