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한거都心閑居] 매화에 대한 단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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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심한거都心閑居] 매화에 대한 단상
  • 석두 스님
  • 승인 2022.06.0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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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승이 머무는 봉은사에는 매화가 한창이다. 그중에서도 봉은사 역대 큰스님들의 진영(眞影)을 모신 영각(影閣) 옆에 피어있는 홍매화는 단연 으뜸이다. 아마도 도심 인근에서 피는 매화꽃 가운데 가장 먼저 피기 때문일 것이다. 전해 오는 말에 의하면, 봉은사의 홍매화는 사명대사(四溟大師, 1544~1610)가 일본에서 처음으로 가져와서 심었고, 옆에 있던 요사(寮舍)를 매화당(梅花堂)이라 불렀다고 한다. 지금의 매화는 그때의 그 매화가 아니요, 요사도 그때의 그 요사는 아니다. 

‘고결’과 ‘인내’라는 꽃말을 가진 매화는 시서화(詩書畵)의 오랜 주제이기도 하지만, 절집에서 깨달음을 노래하는 오도송(悟道頌)의 주제로도 자주 등장한다. 

진로형탈사비상(塵勞逈脫事非常)

긴파승두주일장(緊把繩頭做一場)

불시일번한철골(不是一翻寒徹骨)

쟁득매화박비향(爭得梅花樸鼻香)

“티끌 같은 세상의 번뇌를 

벗어나기는 예삿일이 아니니 

노끈의 끝(화두)을 바짝 잡고 

한 판 제대로 붙으리라.  

뼛속까지 사무치는 매서운 추위가 아니면 

어찌 매화가 코를 찌를 듯한 향기를 

피울 수가 있으리.”

황벽희운(黃檗希運, ?~850) 선사의 게송이다. 황벽 스님은 정치적인 문제로 잠시 절집에 사미승으로 지내고 있던, 후에 당나라 황제가 된 선종의 뺨을 세 대나 때릴 만큼 기개가 대단한 분이셨다. 그래서 황제는 후에 ‘추행사문(醜行沙門)’이라는 호를 내리려고 했다. 황제의 소심한 복수심이었다. 요즘 말로 하면 ‘폭력승’이라고 호를 붙이려 한 것이다. 다행히도 스님의 도력(道力)을 흠모하던 재상의 만류가 아니었으면 전대미문의 법호(法號)가 탄생했을 것이다. 

이 게송에는 스님의 이러한 기개가 고스란히 묻어나 있다. 겨울이 추울수록 매화꽃 향기는 더욱 짙어진다. 시련이 클수록 성취감은 더욱 배가된다. 그래서 스님에게 있어 매서운 겨울 추위는 보통의 범인(凡人)들이 느끼는 추위와 다르다. 오히려 더욱 분발하게끔 하는 고마운 추위이다. 삶 속에서 닥쳐오는 시련도 마찬가지이다. 그 시련도 지나고 나면 나를 더욱 성장시키는 원동력이었다. 

“상처 없이 어찌 봄이 오고, 상처 없이 

 어찌 깊은 사랑이 움트겠는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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