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한바탕 굿처럼-‘이별의 공동체’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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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한바탕 굿처럼-‘이별의 공동체’ 리뷰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1.08.27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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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
제인 진 카이젠Jane Jin Kaisen
‘이별의 공동체 Community of Parting’ 전시 리뷰
제인 진 카이젠, <이별의 공동체>, 2019, 비디오 스틸.
하얀 한복을 입고 회전하는 작가의 모습과, 원심력에 의해 그의 손을 떠난 드론 카메라가 땅 위에 한 점으로 서 있는 작가를 상공으로부터 찍은 장면.

한국계 덴마크 작가 제인 진 카이젠의 전시가 서울 종로구에 있는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제주에서 태어나 덴마크로 입양된 작가는 초국가적 입양아라는 개인적 트라우마를 사회, 역사, 정치와 연루된 집단적 트라우마에 대한 논의로 확장한다. 그 과정에서 펼쳐지는 다양한 질문들과 무속문화에 대한 작가의 독특한 관점을 엿볼 수 있었던 현장에 미리 다녀왔다.

지극히 개인적이면서도 집단적인

제주도에서 태어난 작가는 생후 3개월 때 덴마크로 입양되었다. 2001년, 스물한 살이 되던 해 처음 자신이 태어난 곳을 방문한 작가는 자신의 경험이 결코 개인에 국한된 일이 아님을 깨닫는다. 한국전쟁 이후 해외로 입양된 약 20만 명 이상의 초국적 입양 아동들이 백인 중심사회에서 경험하는 인종 차별과 정체성 혼란, 개인적 고립 등 개별적 불행 이면에는 식민주의와 전쟁, 군국주의, 서구중심주의와 글로벌 정치 역학 등 거대한 역사적 불행이 자리하고 있음에 주목하게 된 것이다.

작가는 4·3 사건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 현장 등 제주라는 공간의 역사적 트라우마와 자신의 트라우마를 교차시키는 작업을 해왔다. 그렇게 자신의 정체성과 제주라는 지리적 공간을 다시 보는 작업으로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지극히 집단적인 서사를 구축하며 작가로서의 입지를 다져왔다.

이번 전시의 중심이 되는 작품 <이별의 공동체>(2019)에서는 작가 자신의 이야기와 DMZ, 서울, 북한, 일본, 중국, 카자흐스탄, 독일, 미국 등에서 만난 여성들의 이야기를 병치하는 방식으로 서사를 확장할 뿐만 아니라 여성 간의 연대 의식마저 구축해내고 있었다. 함께 설치된 <땋기와 고치기>(2020)에서 서로의 머리칼을 땋아주는 여성들의 모습 역시 서로를 연결하고 위로하고자 하는 듯했다.

 

이별 담지한 공동체의 유연한 모임

흔히 공동체라는 단어에서 우리는 절대 변치 않을 공통의 것, 예컨대 혈연, 지연, 종교 등을 중심으로 한 단단한 결합체라는 이미지를 떠올린다. 반면 전시와 작품의 제목으로 쓰인 ‘이별의 공동체’는 이별의 성질을 간직한 공동체, 즉 잠시 모였다가 흩어질 모임을 의미한다.

작가는 한국의 샤머니즘 제의인 굿이 생성해내는 게 바로 이별의 공동체적인 것이라 파악하고, 오랫동안 한국의 무속문화에 관심을 가져왔다. 산 자의 공간에 죽은 자를 불러내서 잠깐의 모임을 하는 일, 삶과 죽음의 경계를 허물며 다양한 존재들의 서로 다른 시간과 공간을 품어내고 관계하는 일, 세상 만물 그 어떤 것도 영원불멸하지 않기에 더욱더 실재에 가까운 순간들로 우리를 인도하는 일. 작가에게 굿은 본래 둘이 아니었던 것을 분별하는 수많은 경계에 도전하고 진실에 가닿을 수 있도록 하는 염원일 뿐만 아니라 그러한 실천의 한 방식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무당과 예술가

이승과 저승, 성과 속, 옳고 그름을 넘나드는 매개자로서의 샤먼, 무당은 많은 예술가에게 영감이 되어 왔다. 작가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무당을 ‘번역자’로 이해한다. 2015년부터 집중적으로 연구하고 있을 정도로 작가에게 핵심적인 테마인 ‘번역의 문제’를 무당의 존재 방식과 연결 지어 생각해 보는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작가는 ‘translation(번역)’의 말뜻을 파헤쳐 보면 ‘carry across(어떤 것을 가지고 넘어가다)’라는 의미, 즉 공간적인 이동을 담지하고 있지만, 과거의 일을 현재로 가지고 오고 미래의 일을 점치거나 기원하는 무당의 존재 방식은 시간적 번역자의 개념까지 포괄할 수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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