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우리가 정말 함께 살 수 있을까? 양혜규–O2 & H2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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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우리가 정말 함께 살 수 있을까? 양혜규–O2 & H2O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1.02.26 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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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 전시 리뷰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 전시 전경. 
<침묵의 저장고–클릭된 속심> 내부에서 촬영한 사진. 사진 홍철기.

서울에서 하는 전시를 보려면 바다를 건너와야만 하는 필자는 종종 친구와 함께 전시를 보러 가곤 한다. 한정된 시간 안에 전시도 보고 친구도 만나려면 그 두 가지를 합쳐야 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작년 9월부터 올해 2월까지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렸던 <MMCA 현대차 시리즈 2020: 양혜규‐O2 & H2O> 전시도 한 친구와 함께 보러 갔다. 외국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몇 년간 무탈한 결혼생활을 하다 한국으로 돌아와 뒤늦게 고부갈등을 겪고 있는 친구였다. 외국에서 멀리 떨어져 살 때는 몰랐는데 시댁은 가족의 단합이 굉장히 중요한 집안이었고, 이에 이런저런 어려움이 있는 듯했다. 평생 다른 삶을 살아온 사람들과 한 가족이 되는 일이 며느리 입장에서도, 시어머니 입장에서도 쉬울 리 없으리라. 가족과 가족 아닌 이를 가르는 경계가 얼마나 견고할 수 있는지에 관해 이야기하며 전시장에 입장한 탓일까? 양혜규 작품이 지닌 여러 중요한 지점들이 고부갈등이라는 지극히 개인적인 서사 안에서 읽히는 아주 재미난 경험을 할 수 있었다.

 

가족/남, 남/가족

전시는 154개에 달하는 블라인드로 제작된 원통형 구조물 <침묵의 저장고 – 클릭된 속심>(2017)과 함께 시작됐다. 시야를 가리고 몸의 움직임은 막아서지만 그 틈으로 빛, 소리, 냄새 등 비물질의 넘나듦을 허용하는 블라인드의 물성을 활용한 설치작업군이 양혜규의 대표적 작품 유형이다. 이 블라인드 구조물은 크게 두 겹으로 이루어졌는데, 고정된 검은색 외피와 천천히 회전하는 푸른색 내피가 시시각각 변화하며 ‘열림’과 ‘닫힘’의 순간을 생성해내고 있었다. 나와 타인을 가르는 경계가 이와 같다고 상상해보면 어떨까. 벽돌을 쌓아 만든 단단한 담벼락이 아니라 언제든지 휘어지고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벽 너머를 느낄 수 있는 ‘움직이는 블라인드 구조물’ 정도로 말이다. 이런 식이라면 나와 내가 살아온 삶을 완전히 부정하지 않고도 타인과 공존이 가능해지면서 완전히 화합한 내 ‘가족’ 아니면 ‘남’이라는 잔혹한 분별을 고수하지 않아도 될 텐데.

 

공기처럼 물처럼

양혜규는 말한다. “물병 속의 찬물이 뚜껑을 열지 않고도 따뜻한 공기 중으로 빠져나오듯, 경계의 표면에 맺혀 흘러내린다. 서로 다른 온도 차로 인해 발생하는 물의 응결은 조용하고 신중한 소통의 모델이다. 다름을 인지하고 유지한다면, 눈물과 땀이 흐르더라도 공존할 수 있다.” 전시의 제목이기도 한 ‘O2 & H2O’, 즉 공기와 물이 작가에게 중요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관계에서 우리는 좋다가도 부딪히고, 몹시 미워하다가도 아련히 추억하는 등 수없이 많은 전환을 거치기 마련이다. 물이 증발하여 수증기가 되고, 구름이 되고, 눈이 되어 내려서는 또다시 증발하여 차가운 물병 표면에 맺힌 물방울이 되기도 하는 것처럼 말이다. 같은 물질과 요소라도 상황과 맥락에 따라 완전히 그 형태를 달리하는 이 전환의 순간들을 ‘연기의 눈’으로 바라보면 어떨까. 자유롭게 넘나드는 구멍 숭숭 뚫린 블라인드 벽체처럼 관계를 설정할 수 있다면, 완전한 ‘열림’과 완전한 ‘닫힘’ 사이 어딘가에서 머무를 수 있다면, 시집살이의 괴로움도 조금은 견딜 만해질까.

 

이도 저도 아닌, ‘중간’에서

관계를 포함해 세상에는 칼로 무 자르듯 결론짓기 어려운 수많은 문제가 있음을 생각해 본다면, 양혜규의 작업에서 엿보이는 ‘사이’, ‘중간’에 대한 관심이 더욱 잘 와 닿을 것이다. 헤어드라이어, 다리미, 냄비, 마우스 등 일상적 기물을 거울에 비춘 듯 복제·결합해 ‘방울’을 뒤덮은 <소리 나는 가물家物> 시리즈에는 검은색 손잡이가 더듬이처럼 돋아나 있다. 손잡이는 인간과 사물의 중간에서 그 둘을 매개하는 존재다. 손잡이를 잡고 조각들을 움직임으로써 인간은 조각과 연결된다. 이때 발생하는 방울 소리는 인간 세계와 가물 세계라는 두 상이한 세계를 매개하는 신비로운 주문이 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꾸 소외되고 잊히는 매개자 손잡이의 존재를 작가는 주목한다. 짚풀 공예를 이용해 제작한 <중간 유형> 시리즈 역시 특수성과 보편성 사이 어딘가에서 부유하는 존재들이다. 주지하다시피, ‘우리 것’이라 여겨지곤 하는 짚풀 공예는 사실 어느 나라에서건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보편적 공예 방식이다. 문화적 특이성과 보편성 사이에 낀 이 중간적 존재들은 어떠한 목적도 대변하지 않는다는 면에서 오히려 더 실제로 느껴지기도 한다. 어쩌면 이들이야말로 이분법의 함정에서 벗어나 중도(中道)에 자리하는 지혜로운 존재들일지도 모르겠다.

 

함께 살아간다는 것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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