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붓다] 씨앗은 시작-이진경 작가와 토종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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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붓다] 씨앗은 시작-이진경 작가와 토종 씨앗
  • 마인드디자인(김해다)
  • 승인 2021.07.27 09: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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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경, 달, 2015.

평소 잘 알고 지내던 이진경 작가에게서 토종 씨앗으로 전시를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받았다. 토종 씨앗이요? 씨앗은 물론 농사의 농자도 모르는 필자는 대번 거절했다. “아니요, 선생님. 저는 그런 것 관심 없어요. 못하겠어요. 게다가 ‘토종’이라니요. 씨앗에 토종이 어딨어요. 이상해요.” 원하는 것은 꼭 하고 마는 성미의 이진경 작가는 필자를 앉혀 놓고 내리 한 시간을 토종 씨앗에 관해 설명했다. 씨앗이 왜 “시작이고 열매이며 태도”인지, 토종 씨앗 (운동)이 지켜내고자 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이것이 왜 지금, 이 시점에 그리도 중요한지에 대하여.

만약 세상이 변해야 한다면,

그것은

우리 모두가 알고

우리 모두가 누리고

우리 모두가 나누는 것이어야 한다.

마치 달처럼.

__  이진경 작가 노트 중

 

먹고 살자고 하는 일

토종 씨앗의 ‘토종’은 사전적으로는 ‘본디부터 그곳에서 나는 종자’로 풀이되지만, 토종 씨앗은 처음에 없었더라도 여러 해 동안 재배되면서 그 지방의 풍토에 알맞게 된 종자를 뜻한다. 고려 말 문익점이 원나라에서 가지고 왔다는 목화가 그 예이다. 여러 차례 재배에 실패하다 나중에야 씨앗 하나가 꽃을 피워 100여 개의 씨앗을 얻게 되었고, 그것을 다시 재배하고 또 재배하며 씨앗을 늘려나가는 과정에서 목화는 이 땅에 ‘토착화’ 되었다. 즉, 토종 씨앗은 예부터 이곳에서 자라난 씨앗이거나 어느 시점부터 이 땅의 기후와 토양에 적응해 자라난 씨앗이다. 농경사회에서 씨앗은 곧 생명이었다. 집마다 부엌에는 작은 씨앗 단지가 있었다. 한 해 농사가 끝나면 내년 봄에 또 다른 싹을 틔우기 위해 겨우내 잘 보관해 놓는 보물단지였다. 생명이었던 씨앗이 거래 가능한 상품이 된 것은 일제강점기 토지조사사업으로 근대적 토지 소유 관계가 확립되고, 산미증식계획으로 한반도가 쌀 생산 기지화된 이후부터였다. ‘종자권(종자에 대한 권리)’이 생겨났고, 종자권에 따라 거래되지 않은 씨앗이 봄에 스스로 열매 맺을 수 없도록 유전자를 조작한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이 세계의 농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먹고 살자고 하는 일이 돈을 벌자고 하는 일이 되어버린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명의 가치는 씨앗과 함께 사라져간 것이다. 이쯤 이야기를 나누니 눈이 번쩍 뜨이기 시작했다. 씨앗은 이제 남 이야기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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