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리수 그늘] 정월 아침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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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정월 아침에
  • 정재은
  • 승인 2007.12.1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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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리수 그늘

   종갓집 맏며느리인 내가 해마다 치르는 첫 해 첫 새벽의 일과로 대문부터 활짝 연다. 골목은 아직도 깊은 어둠에 잠겨 있다. 살갗을 찌르는 날카로운 냉기에 몸이 오싹하며 머릿속이 쇄락해진다. 그 예리한 차가움이 새해라는 신선한 감각으로 가슴에 와 닿는다.

   주방으로 들어간다. 벽에 마지막 남은 일력(日曆) 한 장을 마저 떼어내고 나니 어느덧 내 인생이 사십이유여(四十而有餘)의 고비도 넘어 망오십일(望五十一). 덧없는 세월에 잠시 가슴 섬찟했으나, 그것은 세월이 덧없음이 아니라 게으름으로 하여 잔고 없는 텅 빈 나의 손이 허전했음임을 깨닫는다.

   그러나 새 일력으로 바꾸어 걸며 손아름 뿌듯한 그 부피에 나의 마음은 어떤 소망으로 부푼다. 새 일력과 함께 펼쳐질 새해는 새로운 시간, 미지의 세계. 설레는 가능성으로 어느덧 나이를 잊고 젊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내가 살아있는 동안 새해는 거르는 법 없이 세세연연 나를 찾아와 줄 터인데 구태여 먹는 나이를 안타까워할 것이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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