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성의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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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성의 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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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2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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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두수상

Ⅰ.

그리이스의 현인(賢人) 디오게네스는 백주(白晝)에 오히려 촛불을 높이 쳐들고 ‘참사람’을 찾아 다녔다. 그는 온갖 사회적인 풍조나 속사(俗事)를 경시하고 인덕(人德)과 철학을 존중했다고 전한다.

그에게는 많은 기행(奇行)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야말로 그는 출세나 물욕을 헌신짝처럼 포기하고 모멸(侮蔑)한 ‘엉뚱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가 기거한 주택이란 나무통 하나에 불과했고 그의 소원을 들어 주겠노라는 왕에겐 “볕살을 가리지 말아 달라!”는 청뿐이었다고 전한다.

그의 시대에도 ‘참사람’은 참으로 찾아 보기가 힘들었던 모양이다. ‘참사람’이란 어느때나 그다지 흔히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참사람’이란 진실 속에서 사는 사람이다. 저 한사람 잘나 보이려고 뻐기는 따위는 속물이요 추물이요 동물이다. 세상에선 진시황이나 나폴레옹을 영웅이라고 추앙하지마는 단지 자신들이 영웅으로 되기 위해서 수많은 사람의 노력이나 생명을 희생시킨 패덕한(悖德漢)일 뿐, 이 사람들이 인류를 위해서 무엇을 했다는 말인가?

디오게네스가 있었다면 “툇!”하고 그들 얼굴에다 침을 뱉았을 것이다. 아니면 “이 악마놈들!”하고 호통을 쳤을런지도 모른다. 이들은 ‘참사람’으로서의 진실 속에서 살았다는 증거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이 세상은 저 혼자만이 살아가는 세상이 아니다. 많은 인류가 함께 살아가는 공동의 소유요 공동의 광장이다. 저 혼자만이 잘나 보려는 속셈은 무엇인가! 진실을 위하여 살아 보지 못하는 인생이 왜 세상에 대한 영․욕(榮․慾)을 탐하는가! 참으로 변죽 좋고 체면 없는 어처구니 없는 자들이다. 오천 년 전의 디오게네스는 지금도 지하에서 울분할 것이다.

우리는 ‘내’가 아니고 ‘인류’라는 생각 속에서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잘 살아가는 ‘참사람’이라는 것을 깨칠 일이 아닌가.

Ⅱ.

춘원(春園)의 작품『원효대사』에 아래와 같은 대목이 나온다.

대안은 젖 한 모금을 제 입에 머금어서 새끼 너구리의 입을 벌리고 흘려넣어 주었다. 그래도 그 젖은 수르르 입에서 흘러 나올 뿐이었다.

“어,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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