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다라의 숨결
85년 12월 7일부터 한 달 동안 간다라 (Gandhara) 의 불교유적지를 답사하였다. 불교미술 가운데서도 특히 불상 (佛像) 의 원류로 알려진 곳이며, 유명한 실크 . 로드의 길목이기도 하다. 현재 이곳은 파키스탄의 북부지역으로서 카라코람의 연봉 (連峰) 이 하늘을 찌르는 험준한 곳이다. 개인적으로는 두 번째 방문이다. 초행 때는 혼자였고, 지금은 일행이 여럿이다. 인도나 파키스탄을 혼자 다녀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퍽 외롭고 피곤하다. 역겨운 카레를 삼켜야 하고, 숨 막히는 더위를 견뎌야 한다.
그보다 더 괴로운 것은「동물원의 원숭이」신세가 되는 일이다. 소위 선진국이라는 나라들에서는 그런 감정을 별로 느끼지 못했다. 대체로 무관심한 것이 일상화되어 나 따위의 황색인에게는 눈길조차 돌리지 않는다.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숫제 옆에 와서 지분거리고 만져보고 하는 통에 영 죽을 지경이다. 그래서 나는 서울거리에서 외국인을 보면 의식적으로 눈길을 돌린다. 그 호기심에 찬 눈동자가 얼마나 이방인의 행동을 제약시키며, 또 피곤하게 만드는가를 절실히 느꼈기 때문이다.
그 옛날 불교가 번성했을 때, 간다라 지역의 중심지는 페샤와르였다. 지금도 옛 번영의 그림자는 짙게 이 일대에 깔려 있다. 탁티 . 바히승원 (僧院) 을 비롯해서 챨사다카이바르 패트 등 불교문화의 보고 (寶庫) 가 산재하여 있다. 이곳은 또 유식불교의 요람이다. 무착 (無着) . 세친(世親) 의 고향으로서 대승불교가 찬연한 사상적 업적을 남긴 유서 깊은 고장이다.
그러나 간다라 어디에도 불자는 없었다. 늘 가슴 한구석을 허전하게 만드는 것은 깨어진 불상보다 신심 (信心) 없는 사람들을 대하는 일이다. 박물관에를 가도 유적지를 가도 온통 알라신 이야기뿐이다. 불적지에서 메카를 향해 경배하는 무슬림을 보는 일은 퍽 당혹스럽다. 단순히 골동품 이상일 수 없는 진열장속의 불두 (佛頭) 들을 대할 때면 처량한 마음을 누를 길 없다. 우리는 이 간다라유역의 불상들을 만들던 신심있는 승속 (僧俗) 들의 몇몇 가슴 아픈 이야기들을 알고 있다.
무슬림에게 쫓기면서 기약없는 남으로의 길을 재촉하던 불교도들, 혹은 몇 날 몇 달씩 머물며 인더스의 하류를 따라 방랑하던 그들은 간곡한 정성으로 부처님을 만들어 모셨다. 인연 있는 국토에 불음 (佛音) 이 다시 울려 퍼지기를 기대하면서 거친 손마디를 새로운 희망으로 가득 채웠다. 그렇게 다듬어지고, 세워졌던 흔적들이 아직도 칠라스라는 곳에 남아 있다. 마애음각 (磨崖陰刻) 의 불상. 탑, 공양상 등이 천 년의 세월을 견디어 온 것이다.
간다라를 여행하면서 제일 인상 깊게 느낀 것은 카라코람 연변의 풍경이다. 8,400m의 난가. 파르바트, 7,800m 라카포쉬 등 하늘을 찌르는 만년설 (萬年雪) 의 봉우리를 가로지르며 2차선 도로가 닦였다. 이 길은 중공과 파키스탄을 곧 바로 연결하는 산업의 동맥이며, 정치적으로는 인도를 고립시킨다는 다목적 도로이다. 온통 잿빛의 고원 사이로 인더스의 물줄기가 흐르며 가도 가도 거칠은 산맥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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