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색의 숲
지난 번에 나는 색이 어찌하여 우리 인식의 대상을 통틀어서 부르는 대명사가 될 수 있는 지에 대한 내 나름의 생각을 정리해 보았었다. 플로리다 주의 남단(南端) 키웨스트를 여행하던 때의 체험-날이 저물고 안개가 피어오르면서 길과 자동차와 바다와 섬과 하늘과 땅이 모두 안개에 덮여 그들 나름의 독특한 색깔을 잃어버리게 되자, 내가 눈을 똑바로 뜨고 지켜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내 앞에 엄연히 존재하던 세계가 감쪽같이 자취를 감추어버린 그 이상한 체험을 통해, 나는 색깔이야말로 우리가 어떤 대상을 인식하고 그 인식한 것을 정확하게 판별하는 데 있어 첫 번째 필수조건임을 알게 되었다고 말했었다.
비슷한 경험은 그 후로도 여러 번 되풀이 되었다. 한번은 햇살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스며들지 않는 지하 수십 미터의 동굴 속으로 내려가게 되었다. 갑자기 눈앞이 온통 까맣게 되어서 내가 눈을 뜨고 있는 건지 감고 있는 건지조차 의심쩍었다. 재빨리 눈을 서너 번 껌벅거리고, 슬그머니 손을 내밀어 옆 사람이 손에 스치는 것을 알고 나서야 내가 눈을 뜨고 있다는 것이 확인되었고, 내 눈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눈이 감지(感知)할 수 있는 색깔이 오직 암흑의 색깔이기 때문에 눈이 아예 쓸모가 없어진 것을 알게 되었다. 새삼스럽게 색깔의 중요성에 대해 속으로 머리를 끄덕였다.
왜 색즉시공 공즉시색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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