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ed rice, 영지버섯밥 아니었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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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d rice, 영지버섯밥 아니었남?
  • 관리자
  • 승인 2007.10.0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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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현행자의 세상사는 이야기 /공양간 이야기

모락 모락 하아얀 수증기 속에 연신 흘러내리는 땀을 훔쳐가며 밥 푸기에 열중하고 있는 공양주스님의 옆모습. 밥 한 그릇이 내 입 속에 들어오기까지 그 무한한 ‘관계와 관계’ 속에 일어나는 현묘한 연기(緣起)의 법칙을 떠올려 본 적이 있는가? 이 아리따운 공주(공양주스님의 애칭)의 옆모습은 저 수많은 존재들의 정성어린 손길을 한 몸으로 표현한 매우 ‘상징적인’ 코드이다.

작년 여름 어느 날 나는 공주였다. 5박 6일씩 서로 바꾸어가며 사는데, 한 스님이 중요한 일로 갑자기 출타하게 되어 대신해 소임을 살기로 했다. 300여 대중스님 밥을 짓는 운문사 공양간에서 ‘인수인계’는 생명과도 같다. 그런데 이처럼 갑자기 소임이 바뀌게 되면 여러모로 실수가 생기기도 한다. 허나 난 별 두려움 없이 소매를 걷어 올렸다. 쌀 앉히고 물 맞추고, 눈감고도 척척. 거기까진 좋았다.

즐겁게 공주로서의 하루를 잘 지내고 쉬고 있던 그날 저녁, 별좌스님이 냉장고 이상한 통에 쌀이 있다고 혹시 아느냐고 물어온다. 뚱한 눈빛으로 냉장고로 향한 나, 한 구석에 커다란 들통, 그리고 그 속에 한 가득 고이 잠들어 있는 씻은 쌀들! 아니? 그것도 모르고 나는 이미 두 끼 분 쌀을 열심히 씻어놓았건만, 이 푹푹 찌는 여름날, 왜 이 쌀이 여기 있다는 인수인계가 안 된 것일까? 일단은 쌀 상태부터 확인, 아직은 양호하다. 다행! 얼른 물에 몇 번을 헹궈 건져뒀다가, 다른 소비할 방법이 없으니, 다음 날 아침 발우공양 밥을 이 쌀로 앉혔다.

새벽, 여느 날과 다름없는 고요한 공양간. 드디어 5시 35분, 밥풀 시간. 촤아악! 수증기 빠지고 철커덩 뚜껑이 열리는 순간, 만반의 준비를 다하고 그 속을 들여다 본 순간, 나는 하마터면 쓰러질 뻔했다. 밥 전체에 빨간 물감을 뿌린 듯, 그것은 썩은 쌀로 이루어진 ‘붉은 밥’, 분명 냄새도 빛깔도 괜찮았었는데.

도감스님을 찾아 주걱을 들고 달렸지만, 하필 밭에 나가셨다고. 시계는 날개를 달았는지 벌써 40분. 최소한 45분까지는 밥통 12개를 다 들여보내야 하는데. 황당, 긴장! 그러나 난 부처님 제자인데, 가슴을 쓸어내리며 붉은 밥 속으로 과감히 주걱을 던졌다. 초고속 매가패스로 5분 만에 12통을 채워 보내며, 반드시 어른스님께는 데워진 어제 밥을 떠 드리라고 신신당부도 잊지 않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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