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어릴 적 점(岾) 마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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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어릴 적 점(岾) 마을에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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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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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혜의 향기/ 나의 살던 고향은

늘 흙과 함께했던 어린시절, 그런 어린시절의 추억이 지금 이렇게 삐득삐득 말라버린 나이에도 문득문득 고개를 드는 것은 아마도 내 삶에 있어서 그 시절이 제일 재미있었던 모양이다.

목포에서 철선으로 40여 분이면 거뜬히 데려다주는 해남 화원(물론 지금은 영산강 하구둑으로 금호방조제로 30여 분이면 넉넉하지만), 땅끝이라면 해남 송지(갈두)가 아니라 여기 화원(매월)이 더 쑥 들어간 땅끝일 것이다.

주말이면 그렇게 배 타고 할아버지 집으로 가서 정말 흙으로 놀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옛날 고무 플라스틱이 나오기 전 우리의 그릇 문화를 선도했던 옹구(옹기)의 생산지였기 때문이다. 점토의 ‘점’자가 들어가 동네 이름도 점등(‘점’자가 들어간 동네 이름은 다 도자기나 옹구를 구워내던 가마가 있는 동네라고 생각하면 된다)이었다. 옹구는 구워지면 여기 저기 섬지방과 육지로 운반되어야 했기에 바다가 인접한 곳이어야 했고 그런 조건의 점등마을은 바다가 지천이었다.

가마에 불을 때는 날이면 가마에 둘러서서 불구멍에 고구마 얹어 구워 먹기도 하고 또 그을음을 코에 묻히며 마냥 좋았던 점등마을 어린 친구들. 가스나 전기가 없던 그 시절 나무를 때서 밥을 지어 먹었던 화덕(나무를 넣고 때는 아궁이가 있는 옹구)이 구워져 나와 뜰에 세워 놓으면, 그 화덕에 숨어 숨바꼭질을 하기도 하고, 큰 항아리 속에 들어가 숨어버리면 머리카락 하나 들키지 않는 완벽한 숨김이었다.

더우면 바닷물에 뛰어들기 일쑤였고 옹기 만들다 남은 흙으로 각종 장난감이 우리 손에 의해 만들어지기도 했던 곳, 그런 놀이들도 싫증나면 흙바탕에서 주로 여자아이들이 했던 콩 주워먹기(공기놀이) 한다고 동네 여기저기 싸돌아다니면서 조그마한 우리 주먹으로 줍기 알맞은 돌 주우러 다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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