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국보로 지정된 우리 사발과의 만남, 그 인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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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국보로 지정된 우리 사발과의 만남, 그 인연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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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6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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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인연이야기/막사발이 아니라 ‘진주 멧사발’입니다

인연, 사람과 사람의 만남을 흔히 ‘인연’이라 표현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고등학교 시절, 국어책에 나오는 피천득 님의 ‘인연’이라는 수필과 ‘쉘브르의 우산’이라는 영화가 떠오릅니다.

여기서 필자가 이야기할 인연은, 저와 400여 년쯤 조선 사기장(일본 도공)이 빚은 사발 하나, 일본에서 국보가 된 그 사발과의 만남을 뜻합니다. 필자와 이 사발과의 만남은, 나 자신으로 하여금 우리 사발에 대한 눈을 새롭게 뜨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7년 전, 이른 봄날이라 기억됩니다. 진주 MBC 방송사에서 근무하는 김석창 PD가 나를 찾아 왔습니다. 그는 광복 50주년 특별 기획으로 일본에서 국보가 된 신화적인 사발을 직접 취재하고 있다고 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정작 중요한 국보사발의 촬영이 어렵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일본에서 사발로 유명한 ‘신정희(필자의 부친)’선생이 나서면 가능하리라는 이야기를 듣고 찾아 왔다는 것이었습니다.

필자는 이 사발의 모국인, 우리 나라에 알려야 한다는 당위성과 사발을 주로 빚는 사기장으로서 이 사발을 직접 만져보고 싶은 욕망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성공할지는 모르지만 최대한 협력하겠다는 약속을 했습니다. 그 후 우리는 일본으로 건너갔습니다.

둘이 찾아 간 곳은 일본 다도확립자 ‘센노리큐’의 후손이며 현재 일본 다도계의 상징인 오모데 센케의 히사다 종정이 있는 곳입니다. 히사다 종정은 필자의 아버지(신정희)와는 오래된 친구이기도 합니다. 저는 히사다 종정에게 촬영을 부탁했습니다.

필자의 이야기를 들은 히사다 종정은 이 사발은 현재 교토에 위치한 대덕사의 암자인 고봉암에서 소장하고 있고, 촬영이 성사되도록 최대한 협력할 것이라고 약속했습니다.

귀국 후 얼마 지나지 않아 일본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촬영이 성사되었다는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정한 날에 촬영을 하러 오라는 것이었습니다. 물가가 비싼 일본에서 사비까지 써가며 열심히 일했던 김 PD와 뒤를 도왔던 나에게도 아주 기쁜 소식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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