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절에 빨리 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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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절에 빨리 가요!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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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연이야기

나의 어린 시절, 우리집에서 어머니가 아버지 몰래 하는 일은 두 가지였다.

두 동생과 나에게 엿이나 기타 군것질 거리를 사주시며 어머니는 늘 신신당부를 하셨던 것이다. 아버지가 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집안이 시끄러워지기 때문이다. 이 비밀스런 일의 하나는 그릇을 장만하는 것이었고 또 다른 하나는 절에 불공을 드리러 가는 것이었다.

어머니는 보통 그릇을 하나 장만하려면 힘든 고개를 넘는 일만큼이나 몹시 어려운 결심을 하셨던 것 같다. 잘 묶은 보따리로 또는 머리에 큰 짐을 이고 이 동네 저 동네로 그릇을 팔러다니는 낯익은 얼굴의 아줌마가 어머니를 붙들고 집요하게 장사를 할라치면 번번이 어머니는 허물어지곤 하셨다. 결국은 허리춤에서 만지작거리던 열쇠를 꺼내 큰 죄를 짓기나 하는 것처럼 콩당콩당하는 마음으로 광에서 보리나 쌀을 두어 됫박 퍼내고야 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릇장사 아주머니는 장사를 제법 잘 하는 사람이었던 것 같다. 우리집 사정을 일일이 꿰고 있었으니 말이다. 마치 그릇이 우리집에 없어서는 안 될 물건처럼 말을 하면, 귀가 얇은 어머니는 그때마다 거절을 못하셨다.

어머니는 지금도 귀가 얇다. 노인들을 상대로 불량건강식품을 파는 장사들이 건네주는 휴지며 싸구려 물건들을 가져오시다 결국에는 바가지를 쓰고 약을 사서 먹다가 쌓아놓은 것이 내가 아는 것만도 20여 가지가 넘는다. 내가 아마 어머니를 닮아서 귀가 얇아 남의 말을 잘 듣는 것 같다.

또 하나, 비밀스런 일은 아버지 몰래 절에 가시는 것이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절에 가시는 것을 몹시 싫어했다. 아버님은 스님도 좋아하지 않으셨던 것 같고 어머니가 절에 가져가는 쌀과 돈을 못마땅해 하셨다.

그래도 어머니는 아버지로부터 심한 구박을 당하시면서도 번번이 때가 되면 절에 가셨다. 한 달에 두 번, 초하루와 보름날에는 바쁜 농사철에도 마다않고 절에 가셔서 불공을 드리곤 하셨다.

어머니의 가슴 속에 두려움으로 남아있던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신 지도 올해로 벌써 27년째다. 어머니는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마음껏 그릇도 사고 절에도 가신다. 이제는 어머니를 막을 사람이 없지만 몰래 먹는 사과가 맛있는 것처럼 지금 생각해보면 그것이 행복이셨던 것 같다.

지난 해 초파일날은 어머님을 모시고 고향 근처의 천수암이라는 절을 가게 되었다. ‘대상포진’*을 앓고 나신 어머니는 그리 높지 않은 산길을 몹시 힘들어 하셨다.

평소에 천수암 주지스님을 잘 알고 있었기에 낯설지 않은 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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