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하늘에 별이 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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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하늘에 별이 되어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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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토마을 이야기

무더운 어느 여름 날, 호스피스 관계로 잘 알고 지내는 수녀님에게서 전화가 왔다. 짐을 보면 스님 같은데 가족이 없고 임종이 임박한 상태라고 한 번 다녀가길 원했다. 나는 바로 다음 날 아침에 서울로 향했다.

수녀님의 안내로 잠시 작은 방에서 여러 가지 기본적인 임상 자료를 브리핑 받고 호스피스 병실로 들어갔다. 날이 너무 더워 병실 공기가 탁하고 습했다. 창 옆 침상에 뼈만 남은 남자 분이 누워 있었는데 수녀님이 저 분이라고 눈짓으로 말해주었다.

살포시 다가가 깡마른 손을 살며시 잡아드려도 환자는 눈도 뜨지 않았다. 느낌이 스님 같았다. 그래서 귓전에 “스님!” 하고 불렀더니 그제야 눈을 뜨시고 나를 바라보셨다. 웬 비구니가 비구 손을 잡고 서 있으니 “누구?” 하며 놀라면서도 반가운 눈빛이었다.

스님이라는 실체를 확인하는 순간 나는 억장이 무너져 할 말을 잃어버렸다. 머리카락과 수염은 제멋대로 길어 엉망이고, 목욕은 언제 했는지 옷 속에 비늘이 뚝뚝 떨어지고, 손과 발톱은 길어 살을 파고들어 갈 정도였다. 노숙자보다 더한 그 모습, 대명천지 밝은 하늘 아래 우째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무엇부터 먼저 해야 하나 막막한 심정이었다. 밖에 나가 속옷, 바리깡, 면도기, 수건 등등을 사왔다. 휠체어로 모시고 간신히 병실 목욕탕에서 삭발 면도하고 깨끗한 새 속옷으로 갈아 입혀 드렸더니 그 병원 자원봉사자들이 모두 깜짝 놀라는 눈치였다. 타종교 봉사자가 나를 찾아와서 정말 죄송하다는 말을 했다.

“저희는 스님인 줄도 모르고 기독교인 천주교인 할 것 없이 찾아와서 찬송가 부르고 성경 읽어 드리고 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나중에 그 병실 보호자에게 들은 이야기지만 기독교인들이 목사를 데리고 와서 기도를 드리고 하나님 믿어야 천국간다며 난리를 피웠다고 한다.

천주교 봉사자는 임종 전에 대세(천주교에서 환자에게 주는 세례)를 받게 하자고 하여 원목실에 신청을 하려고 했는데 수녀님이 나에게 연락을 해서 오게 되었노라는 말을 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스님께서는 누가 와서 무슨 짓을 해도 눈을 뜨지 않으셨고, 봉사자들이 목욕을 하자고 해도 거부하시며, 손톱 발톱 깎는 것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하셨다.

‘왜 그렇게 해야 했으며 그럴 수 밖에 없었을까? 그렇게 무더운 여름날에…’

(지금이라도 누구 말좀 해보세요? 아는 사람.)

나는 벼랑 끝에 선 기분이었다. 다 씻기고 갈아 입혀 자리에 눕혀 놓고 바라보니 얼마나 거룩하시고 맑으신 지… 옛 말에 한다리가 천리라고 그래도 부처님의 한 제자로 비록 비구니에게 당신 몸을 맡기시는 게 덜 서글프고 덜 비참했으리라.

“스님! 제가 이제 곁에 있을 거예요. 아무 염려마세요.”

우리는 서로 마주 눕고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다. 법랍 24년 출가 이후 지금까지 선방에서만 정진하느라 토굴 하나도 장만하지 못한 구도자였다 .

지난 겨울 결제 때 자주 잔기침이 났는데 해제하면 병원에 한번 가봐야지 하다가 해제 후 다들 병원은 서울로 가야 한다고 해서 도반들이랑 함께 여기를 왔는데 진찰 결과 폐암 말기로 진단이 나왔다고 했다.

“처음에는 도반스님들이 해제비를 털어 입원을 했고 도반들이 오고 가고 했는데 몸이 그저 그래서 모두들 결제 들어가라고 했지. 그런데 이렇게 빨리 병이 깊어 질 줄이야….”

올해 세속 나이가 47세… 속가에는 여동생 하나 달랑 살아있어 가끔 왔다 가곤 했는데 어렵게 살다보니 요즘에는 통 못 온다고 말씀하셨다.

커다란 키에 뼈만 남은 육체의 고통… 숨이 가파 온 전신 땀 구멍마다 식은 땀이 송글 송글 맺혔다. 전신은 산소 부족으로 청색증이 와서 피부는 파랗게 죽어가고 물 한 모금도 누가 제대로 떠 넣어 주는 이가 없어 혀가 마른 논바닥처럼 갈라져 있었다. 가제에다 물을 묻혀 입 속에 넣어드리고 있는데 밖에서 누가 나를 찾았다. 병원비 문제로 상의차 직원이 올라온 것이다.

직원 말씀이 보호자란에 적힌 전화번호로 전화를 몇 번이고 했지만 연락이 안 되고 여동생이 왔다고 해서 만나 사정 말씀 드렸더니 알았다고 해놓고는 연락도 없고 오지도 않으니 도와 달라는 이야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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