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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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운화상어록(白雲和尙語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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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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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의 세계

백운화상 경한(景閑, 1299~1374)은 전북 고부에서 출생하였다. 그 어록에 이색(李穡)이 붙인 서문에 의하면, “고려 조계종 대선사 경한은 호가 백운이다. 그 자신의 말에 의하면 중국의 하무산 석옥청공(石屋淸珙)의 법을 이었다고 한다.

나이 77세에 취암사(鷲末寺)에서 입적하였다.”고 한다. 경한은 10여 년 동안 중국에 머물면서 많은 선지식을 참하였다. 특히 중국 임제종의 석옥청공에게서 법을 이은 후에 서천(西天)에서 온 지공(指空)에게서 일대사를 해결하였다.

석옥은 임종하면서 그 전법게를 제자 법안(法眼)을 통해 고려의 백운에게 전해줄 만큼 백운을 신임하였다.

백운의 선풍은 이름 그대로 성품이 천진스럽고 전혀 거짓이나 조작이 없고, 형상을 빌어서 이름을 팔지 않았으며, 참으로 속세를 여읜 진경(眞境)에서 노니는 사람이었다.

그 어록에 온보(溫甫)가 붙인 서문에 의하면 백운의 법어는 마치 어둠을 부수는 밝은 등불과 같고, 더위를 씻어주는 청량한 바람과 같았다고 한다.

백운선의 특징은 임제선을 수용하면서도 무심(無心)과 무념(無念)을 강조하여 백운의 선은 무심선(無心禪)이라 불렸다. 백운은 조주의 무자(無字)와 부모미생전본래면목(父母未生前本來面目)과 만법귀일(萬法歸一)을 강조하면서 화두를 무심(無心)으로 들도록 하였다.

백운은 태고보우의 추천으로 공민왕의 부름을 받았으나 사양하였다. 다시 나옹혜근의 천거로 공민왕의 부름에 응하여 신광사(神光寺)에 주석하였다.

그 당시는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터에 불교종단 내부에서도 공부선(工夫選)의 제도처럼 신돈을 중심으로 한 화엄종과 태고를 중심으로 한 선종의 힘겨루기에서 나옹과 백운의 등장으로 선종이 우위를 점령하기도 하였다.

어록 이외에 그 저서로는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본으로 유명한 직지심체요절(直指心體要節) 2권이 있다.

師乙巳六月二十一日 海州神光寺入院日 至門首擧船杖云 盡大地解脫門 入入入無內 出出出無外 到這裏喚什陵三門中門 喚什陵作廚庫 喚什陵僧喚甚陵俗 且道 緣何如此 不見古人云 寬廓非外 寂寥非內 淨裸裸赤酒酒 沒可把 卓船杖一下 喝一喝 便入門

을사년(1370년, 72세) 6월 21일 백운화상께서 해주 신광사에 들어가는 날 산문에 이르러 우선 주장자를 치켜들고 다음과 같이 말했다.

“온 대지가 다 해탈문입니다. 그러니 그 곳에 들어가고 들어가 내부가 없는 곳에 들어가고, 그 곳으로부터 나오고 나와서 밖이 없는 곳까지 벗어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경지에 이르러 어떤 것을 삼문의 중문이라 하고, 어떤 것을 주방과 창고라 하며, 어떤 것을 승이라 하고 속이라 하겠습니까.

자 말해 보시오. 무엇 때문에 이와 같이 되었습니까. 고인이 다음과 같이 말한 것을 들어보지 못했습니까. ‘제아무리 넓다 해도 밖이 없고, 제아무리 고요하다 해도 내부가 없습니다. 그리고 정나라하고 적쇄쇄하여 손잡을 곳조차 없습니다.’”

그리고는 주장자를 한 번 내려치고는 할을 한 번 하고는 산문으로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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