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리게 , 천천히, 만만디 걸어가다 보면 비로소 꽃이 피고 새가 운다.

빨리, 서둘러, 정신없이, 앞만 보고 가는 길엔 자주 붉은 신호등만 켜질 뿐이다. 빠르다는 것은 직선의 마음으로 오직 결과와 표적지, 그리고 죽음뿐이다. 가는 길, 즉 과정은 그리 중요하지 않으니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삶이 거꾸러질 때까지 우리의 등을 밀어붙이는 것이다. 직선과 곡선의 조화 없이 어찌 그림이 되고, 속도와 반속도의 조율 없이 어찌 노래가 되겠는가.

전화보다는 편지가 반갑고, 보일러보다는 군불 지핀 토방이 더 아늑하고 따뜻하다. 봄의 섬진강변 매화에만 너무 몰두하다 보면 그 나무 아래 키낮은 어여쁜 별꽃과 양푼쟁이꽃을 발로 짓뭉갤 뿐이며, 쌍계사 십리 벚꽃 길에만 마음을 주다 보면 그 꽃길 아래 푸르른 청보리밭이 보이지 않는다.

봄은 봄이로되 봄은 영원히 오지 않는 것이다. 빠르기만 하다는 것은 반성이 생략된 것이요, 참회가 결여된 것이다.

우리 시대에 가장 느린 길은 삼보일배의 길이었다. 전쟁 반대와 새만금 갯벌을 살리기 위해 수경 스님과 문규현 신부님, 김경일 교무님, 이희운 목사님, 그리고 수많은 대중들이 참회의 뜻을 모아 탐진치 삼독을 뿌리째 뽑아내며 65일간 전라북도 부안에서 서울 광화문까지 기어서 왔다.

날마다 삼천배를 올리며 오체투지의 천리길을 마다하지 않고 목숨을 걸었으니 이보다 더한 참회의 길이 있겠는가. 뭇 생명들의 죽음 앞에 내가 먼저 참회하는 이 길이 바로 수행의 길이자 부처의 길이었다.

삼보일배의 진행을 도우며 눈물을 삼키다 ‘자벌레의 길’이라는 시를 쓴 적이 있다.

해창 갯벌의

갯지렁이 한 마리

아스팔트 먼길을 나서시었다

변산반도에서 광화문까지

오체투지의 문규현 신부다

지리산의

자벌레 한 마리

삼보일배의 온몸으로 가신다

날마다 삼천배

백척간두 진일보의

수경 스님이다

무릎관절에 물이 차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