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에 대한 명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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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에 대한 명상
  • 관리자
  • 승인 2007.10.0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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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대산 명상일기

봄이 지나가면서 산과 들은 온통 초록 세상으로 변했고, 오대산에 높이 올라 바라본 대지는 온갖 산들이 푸른 파도가 되어 넘실대는, 무한으로 뻗어가는 바다와 같다. 산이 바다가 되어 파도로 넘실대는 듯한 이 장대함을 직접 보지 않고 어찌 알겠는가. 이렇듯이 깨달음의 산도 스스로 올라 이를 맛보지 않으면 무한으로 굽이치는 진리의 바다도 역시 아무도 볼 수 없으리라.

입산 금지가 해제되어 일요일만 되면 수많은 등산객들이 너도나도 산을 오른다. 하지만 무한으로 뻗어가는 이 천지를 보면서, 육안으로 보이는 이 세계만이 아니라 마음의 눈으로 볼 수 있는 진리의 세계는 몇 사람이나 볼까? 말 없는 가운데 온갖 진리를 말하고 있는 이 삼라만상의 소리를 얼마나 들을 수 있을까?

지난 겨울 폭설이 내렸을 때 동국 김 선생님이 화두를 참구하면서 등산을 하시다가, 생각이 끊어지고 말이 끊어지는 경험을 했다. 이때 눈 내린 산하를 보다가 ‘일체가 바로 이렇구나’ 하고 깨달은 바가 있었다. 그때 한마디 말해보라 하면 그냥 “악!” 하는 소리밖에 할 수 없노라 하면서 성경을 보면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하는 구절이 있는데 ‘태초의 말씀’이란 바로 이것이 아닌가 하고 기뻐했었다.

누구든지 이렇게 공부해 간다면 등산하다가도 산하대지로부터 태초의 말씀도 듣고 말 없는 말도 들어서 일체 가운데서 진리를 깨닫고 볼 수 있지 않겠는가? 이와 같을 수만 있다면 얼마나 기쁘고도 복된 일인가? 참으로 축복하고 축복할 일이다.

오늘은 서암 큰스님의 사십구재 날이다. 지난 오월 스님께서는 “그 노장 그렇게 왔다가 그렇게 갔다 해라.” 하시면서 홀연히 가셨다. 물론 법의 자리에서 보면 생사(生死)도 없고 오고 감도 없고 일어나고 사라짐도 없다. 바다 가운데 수많은 파도가 생멸해도 바다는 그대로이듯 스님께서 가셨다 해서 스님께서 가신 바가 어디 따로 있으랴? 그러나 사십구재를 맞아 생각하니 가신 것 또한 분명한 일이다.

다비를 하는 날 불꽃과 더불어 말 없이 가시는 스님을 보면서, 일체가 본래 이러함을 거듭거듭 확인했었다. 물론 스님께서 일러주신 바도, 말도 없고 본래도 없는 가운데 일체 만상이 오고 감이 있음을 알려 주셨고 당신 또한 그렇게 가신 것이다. 그래도 스님에 대한 마음의 흔적이 남아 사십구재에 꼭 참석하리라 다짐했는데, 봉암사에는 가지 못하고 스님께서 열반에 드신 남쪽을 향해 삼배를 올린다.

그렇게 오셨다 그렇게 가신 스님! 육신의 옷을 벗고 나니 어떠하신지요? 만허라는 호를 지어 주시면서 “가득 찬 것과 텅 빈 것이 둘이 아니니 이와 같이 살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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