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의사 대종 소리 길이길이 울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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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의사 대종 소리 길이길이 울려라
  • 관리자
  • 승인 2007.10.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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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화가 깃든 산사기행/화성 무봉산(舞鳳山) 만의사(萬儀寺)

대동여지도에 보이는 무봉산(舞鳳山)의 이름은 만의산(萬義山)이다. 신라 때부터 있었다는 만의사(萬儀寺)가 산 동남록에 있었기에 그렇게 불리었던 모양이다.

칠현산에서 일어난 한남정맥이 용인 보개산과 수원 광교산으로 나아가기 전 수유현(水踰峴)을 넘어 무봉산을 일으키고 그 아래 진위(振威)라는 큰 마을을 틔워낸다. 안성, 평택, 용인 등이 바로 산과 내를 두고 이웃에 있는 이름 난 마을들이다.

기흥 IC 옆으로 넓지 않은 도로를 따라 구불구불 들어가는데 공장, 연구소, 회사들이 즐비하다. 또 한적하다 싶으면 얼굴을 내미는 돈깨나 들었음직한 음식점은 골프장 때문일 터. 동탄면 중리 버스 종점에 닿고 나서야 산을 따라 들어온 길이 한참임을 깨닫는다.

만의사의 옛터에는 지금 태고종 사찰인 원각사가 들어서 있다. 무봉산 기슭, 지금의 동탄면 신리가 만의사의 옛터라고 하는데 숙종 15년(1689)에 우암 송시열의 묘자리가 되면서 절을 중리의 현위치로 옮겨가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지금의 원각사는 우암의 무덤이 다시 속리산 자락으로 옮겨감에 따라 그의 후손들이 세운 것이라고 한다. 오랜 절터를 옮기게 할 만큼 기세 등등했던 당시 유학자의 힘을 알 만한 대목이다. 그런데 우암 자신의 고향도 아닌, 더군다나 깊고 깊은 이 산골에 묘를 쓴 까닭은 또 무엇일까?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우암이 한때 만의사에 머물렀음을 알 수 있다. 그 후 왕세자 책봉 문제로 제주도에 유배되었다가 정읍에서 사사되었으니 가문에 큰 화를 입힌 셈이 되었다. 때문에 말년에 머문 만의사와 무봉산 자락이 인연이 되어 그의 묘를 이곳에 쓰게 된 것은 아닌지 무딘 추측만 해볼 따름이다. 주자학은 물론 지리학(풍수)에도 조예가 깊었을 그였으니 무봉산 자락의 복된 기상이 그에게도 특별하게 각인되어 있었으리라.

지금도 남아 있는 만의사 터에 대한 이야기는 이런 추측을 가능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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