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흔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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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의 흔적
  • 관리자
  • 승인 200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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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연 이야기

매년 그랬었지만 지난 겨울은 저나, 우리 가족, 그리고 돌아가신 아빠에게는 더욱 길었으리라 생각됩니다. 지난 해 7월 식도암 선고를 받으신 아빠는 수술과 항암치료를 병행하시면서 무던히 긴 여름과 겨울을 힘들게 지내셨습니다.

작년 여름 처음 암 선고를 받고 아빠나 저, 가족들 모두 너무나도 놀랐고 믿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동안의 아빠는 너무나 건강하고 굳센 모습만 보이셨기 때문에 더더욱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한 달 전 정기검진센터에서 검사 결과도 위에 약간의 궤양만 있을 뿐 이상이 없다고 해서 내과 약만 약간 복용했었는데 벌써 암3기라니 받아들여지지가 않았습니다.

그냥 목에 이물감이 느껴진다고 할 때 큰 병원에 가 볼 걸 그랬나 하는 늦은 후회감만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루가 다르게 약해지는 아빠를 보고 그냥 이대로 감상에 젖어 있을 수만은 없었기에 큰 병원에 가서 수술도 받고 항암 치료도 받고 할 수 있는 건 다 해봤지만 이 모든 치료가 완치를 위해서가 아니라 생명 연장의 개념일 뿐, 그 이상의 의미도 그 이하의 의미도 없었습니다.

불행스럽게도 식도 수술 후 한달 여 만에 식도가 다시 좁아졌고 그 전달을 제외하고는 식도를 좁히는 암 덩어리 때문에 돌아가시는 날까지 드시는 것과의 힘겨운 투병은 계속되었습니다. 저도 이번에 간호대학을 졸업한 터라 실습을 나가서 여러 환자들을 보아왔지만 부끄럽게도 내가 환자를 대할 때와의 고통은 비교할 수도 없었습니다. 막상 내가 보호자가 되니까 아는 게 병이라고 더 극성스러운 보호자가 되고 아빠의 고통스러운 모습이 나에게 모두 고통이었지만 다른 고통보다도 드시지 못하는 고통은 정말 큰 고문이었습니다.

차라리 이왕 돌아가실 병이라면 드시는 거나 마음껏 드시고 돌아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해진 정도였습니다. 식도 수술 후 다시 확장 수술을 받고 두 차례의 항암 치료를 받았으나 체력이 약해질 대로 약해진 터라 암 치료를 지속시킬 수가 없었고 부작용이 커서 아빠 스스로도 항암 치료를 중단하길 원했습니다.

항암치료를 그만둔 후 집에서 계시던 아빠에게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생각은 ‘고통’ 그 자체였던 것 같습니다. 자식들 그리고 아내를 두고 예기치 않은 죽음을 맞으려 하니 분노스럽고 죽음을 부정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리고 가끔씩 거울을 보면 문득 당신의 얼굴에 비춰진 죽음의 그림자를 보고 두려워하곤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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