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사, 저 인연의 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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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사, 저 인연의 먼지
  • 관리자
  • 승인 2007.10.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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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사는 세상 이렇게 일굽시다

어린 시절 시골에서 자란 나는 아스팔트가 안 된 신작로변의 정류소 근처에 살았다. 어쩌다 한번 자동차가 지나면 길에는 온통 뽀얀 먼지가 구름처럼 피어오르곤 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먼지 알갱이들은 조금 크고 무거운 축에 속했던 모양이다. 차가 지난 뒤에는 이내 바닥으로 가라앉아서 봄에 피어오르는 아지랑이나 서산에 지는 붉은 낙일이 이 때문에 흐려보였던 기억은 별로 없다.

그런데 어느 사이엔가 이 먼지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먼지와의 싸움으로 속절없이 늙어갔던 내 어머니뿐만 아니라 그 시절에는 그렇게 성가시기만 했던 먼지들도 이제는 향수 어린 추억으로 내 유년기의 기억 속에만 남아있을 뿐이다.

지금은 어지간한 오지 시골에도 먼지는 없다. 모든 길은 새카만 아스팔트로 덮였거나 모든 마당은 희부연 시멘트로 덮여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중에 어쩌다 드물게 포장 안 된 시골길을 만나면 곧잘 차를 갓길에 세워두고 한참동안 그 길을 걸어본다. 나는 지금 걷고 있는 이 길이 다음에 올 때는 밟아볼 수 없는 흙길이며, 이 길 위로 걸어보는 것은 이것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안다. 십중팔구 예상했던 대로여서 일년쯤 지나 다시 들러보면 대체로 그 길은 먼지 없는 희부연 시멘트 길로 변해있기가 십상이다.

땅은 그 자체가 살아 숨쉬는 생명체다. 이 대지에는 또한 거기에 생명의 젖줄을 대고 있는 숱한 생명체들이 살아가는 곳이기도 하다. 아스팔트로 덮이거나 콘트리트로 포장되는 순간 이 모든 것들도 죽음의 토괴로 변하고 만다. 아스팔트로 질식되어 대기를 호흡하지 못하면 땅의 생명체뿐만 아니라 땅 자체가 질식해 죽어버린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중앙 아시아 지역에서 거대한 흙먼지가 아스팔트를 순식간에 깊숙이 묻어버리며 일대를 높은 흙더미 언덕으로 만들어놓는 장면을 보았다. 그 충격적인 장면에 접하는 순간 섬광처럼 내 머리에 스쳤던 것은 아스팔트에 대한 흙의 복수, 혹은 문명의 테러에 대한 자연의 반격이었다. 정말 그것은 어쩌면 재앙이 아니라 사필귀정의 한 매듭들은 아닐까.

황사는 주로 중앙 아시아 저 광활한 평원이 황폐화되면서 시작된 흙먼지의 대이동으로 야기된다고 한다. 사막화로 풀조차 자라지 못하면서 흙을 대지에 붙잡아두는 마지막 힘으로부터도 풀려나자 흙은 먼지가 되어 바람에 실린 채 지구촌 곳곳으로 이동해가게 되었던 것이다. 이 흙먼지의 대이동에 무슨 뜻이 있는가. 그것은 흙의 압제자들에 대한 흙의 복수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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