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미술과 고향의 오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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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미술과 고향의 오류
  • 관리자
  • 승인 2007.09.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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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21세기/21세기 불교미술을 보는 눈1

사람들은 산사의 목탁소리가 정겹다 한다. 염불소리에는 향긋한 산채맛과 고소한 참기를 냄새가 배어 있다 하고, 법당의 부처님과 보살들은 마치 고향 어르신네처럼 푸근하게 느껴진다고도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산사를 찾고, 고향 뒷산의 솔바람 소리를 듣는다 했다.

고향(故鄕)이라 했다. 옛 ‘고’, 시골 ‘향’이라 옛 시골이라는 말이다. 그 고향을 산사에서 읽는다는 것이니 과연 불교가 한국인의 배냇신앙이라 할 만하다. 그런데 얼마나 오랜 옛날의 시골이기에 고향을 느낄 수 있을까. 그 세월이 자그만치 천년을 지나 이천년에 가깝다. 그래서 친근하기 이를데 없다. 그래서 여기에 함정이 있다. 불교에도, 그리고 불교미술에도 고향의 오류가 도사리고 있다. 허물이 있어도 고향 사람들은 덮어주리라는 기대가 있다. 그럴까.

불교미술이란 불교에서 보는 미술이라는 뜻이다. 그것은 원인지향적인 미술을 보는 눈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본다면 불상(佛像)이나 불화(佛畵)는 종교적 예배의 대상으로서, 계율을 마음 속에 새기기 위한 표지거나, 불 보살 등의 상호, 의습, 장식, 지물 등의 외관과 주처(住處)와 발원 또는 행원 등을 염관하는 이른바 관상(觀想)의 수단으로 조성되어 교단에서 통용되어온 미술의 한 형태가 된다. 그 배경에 삼보(三寶)가 있다.

그러므로 불교의 미술은 석존으로 존칭하는 부처, 석존의 깨달음을 일컫는 법, 그리고 승단의 수행을 비롯하여 신도들의 신앙, 예배의 대상을 객관화하여 공감대를 형성해나가는 시각적 조형물을 말한다.

여기에는 큰 절의 전과 각을 일컫는 당(堂), 탑, 불상, 불화, 장식, 지물 등이 포함될 수 있다. 물론 미술에서 이들을 다룰 수는 있다. 그러나 불교의 미술은 미술적인 잣대에 따라 분류되는 미술의 불교는 아니다. 미술에서 보는 불교가 있다. 미술의 불교는 고향에 온 감회로 정겹게 불교를 본다. 그래서 고려불화는 숨이 막히도록 아름답고, 서산 마애삼존불은 백제인의 미소를 담고 있다 하고, 석굴암의 전실로 비바람을 막아드리니 부처님이 얼마나 편안하실까 하고 흐뭇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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