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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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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제별로 가려뽑은 경전말씀

불교도들은 누구나 아미타부처님의 정토(淨土)를 염두에 두고 살아간다. 『무량수경』, 『관무량수경』, 『아미타경』과 같은 정토경전은 세상의 오염과 미혹이 존재하지 않는 아미타불의 정토를 설한다. 정토란 온갖 행원과 불법의 광명으로 장엄된 부처님의 나라이다. 그리고 우리 나라 불교 역사의 어디에나 모든 방면에 정토에 대한 열망이 숨쉬고 있듯이 우리 나라의 불교는 현세의 지복과 깨달음을 추구하면서도 정토에 대한 열망을 아주 깊은 정서로 다듬어 해탈의 사상으로 승화시켜 왔다. 현대의 우리는 지금 우리 나라 정토불교의 깊은 정신성과 신앙을 망각한 지 이미 오래이다.

정토신앙의 본질은 구원이다. 정토신앙은 예토의 오염을 반성하고 자신의 나약함을 진솔하게 인정한다. 결국은 소멸할 수밖에 없는 유한한 존재로서 아미타부처님의 대자비와 본원(本願)에 귀의하여 정토를 희구한다. 그렇다면 정토신앙은 나약한 인간이 절대자의 힘을 빌리는 연약한 신앙일까. 아니다. 정토신앙은 숙업의 올가미에 묶여 있는 연약한 인간, 인간이 추구하는 욕망의 어두운 나락을 깊이 응시하여 스스로의 죄업을 참회하고 탐욕과 무지, 항상 죽음의 그늘에 덮여 있는 유한한 예토에서 정토를 구현하려는 신앙이다. 인간 스스로의 나약함과 유한함을 진솔하게 인정한다는 것은 절대 부끄러운 일이 아니다. 이 작은 깨달음이야말로 정토신앙의 출발점인 것이다.

정토신앙은 우리 나라의 불교의례, 불교미술, 사상과 문학을 이끌어 온 원동력이었다. 정토에의 깊은 염원을 노래하는 신라 향가 ‘원왕생가’, ‘제망매가’와 아미타부처님을 조성하여 모신 한국불교의 여러 가람들, 정토삼부경에 대한 깊은 천착을 통해 드높은 수준에 도달한 주석서를 남긴 옛 학승들의 정신세계, 건봉사의 만일염불결사도 모두 치열하면서도 심원한 경지에 도달한 정토불교의 얼굴이다. 불상의 조성과 봉안은 정토신앙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즉 불상을 봉안하는 법당은 닷집과 영락(瓔珞), 번(幡) 등으로 미려하게 장엄된다. 그리고 여러 대승경전에 수록되어 있는 바와 같이 향화(香花)로 예배공양하며 송경한다. 여기에는 음악과 무용이 포함된다. 즉 불상을 봉안하고 예배공양하는 불사에는 종교의례·공예미술·음악무용이 종합적으로 사용되는 것이다. 불상을 예배 공양하는 공간과 의례는 바로 정토경전이 묘사하고 있는 정토의 세계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은 불상에 예배하는 마음을 불상에 전주통일(專注統一)하여 불국의 부처님을 보는 수행법이 생성되었다는 것이다. 불상을 중심으로 한 염불삼매, 관불삼매(觀佛三昧)는 바로 선정의 실천이다. 이러한 실천의 이면에서 붓다의 영원함에 대한 신앙이 자라난 것이다. 불상을 봉안한 법당은 바로 정토왕생을 희구하는 신앙을 닦는 수행공간이다. 그러므로 불교의례와 예술은 정토사상과 무관하지 않은 것이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말씀하셨다. 그 때 세자재왕불이 법장 비구에게 고하시되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하여 부처님의 나라를 장엄할지니 그대는 마땅히 스스로 알아야 한다. 법장 비구가 부처님께 사뢰었다. “이 가르침은 넓고 깊어서 저의 경계가 아닙니다. 오직 원하옵나니 세존이시여, 제불여래의 정토의 행을 설하시어 제가 이 가르침을 듣고서 마땅히 설한 바와 같이 수행하여 원하는 바를 이루게 하소서.” 그 때 세자재왕불은 그가 높고 밝으며 원하는 마음이 깊고 넓음을 알고 곧 법장 비구에게 설했다. “비유컨대 어떤 사람이 큰 바다를 되로 퍼내어 수겁이 지나면 오히려 바다 밑의 보물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사람이 지극한 마음으로 정진하여 도를 구하는 마음이 멈추지 않으면 마침내 그 결과를 얻을 것이니 어찌 원하는 바를 이루지 않겠는가?” - 『무량수경』 上

이 발원문은 1930년 황해도 곡산군에 발견된 금동삼존불의 광배에 새겨져 있다. 국보 85호이며 571년 경에 조성된 삼존상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처럼 우리 나라의 옛 불상의 명문(銘文)에는 스승, 선망부모, 가족 등의 정토왕생을 기원하는 발원이 많이 남아 있다. 즉 불상을 조성하는 공덕을 망자에게 돌려 망자의 정토왕생을 기원하는 것이다. 옛부터 그랬지만 지금도 한국인들에게는 가족주의를 기본으로 하는 조상숭배의 전통이 있으며 제사는 유교적 효의 중심적인 덕목이었다. 일반적인 한국인들은 부모, 형제, 가족, 친지가 사망하면 절에 가서 49재를 올린다. ‘지옥에 떨어지거나 축생으로 태어나지 말고 좋은 데 가라’, 즉 영가(靈駕)가 불국정토에 왕생하기를 바라는 소박한 염원을 품고 망자의 명복을 기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죽은 영가의 이름으로 경전을 법공양하는 등 보시를 행하기도 한다. 더욱이 불교에서는 연고가 없는 무연고 영가들을 위한 천도재도 불사 때마다 행한다. 이와 같은 일반적 한국인들의 삶과 죽음에 관한 정서는 정작 당사자들은 의식할 수 없더라도 정토교에 기반을 두고 있다. 즉 한국인들은 유교적 효도를 불교의 정토교적 기반에서 실천하는 것이다.

저희들이 정성을 모아 무량수 부처님상 한 분을 조성하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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