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가르침에는 천리 밖에서도 감응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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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 가르침에는 천리 밖에서도 감응이 있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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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9.2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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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승법석/ 각훈(覺訓) : 생몰연대 미상

고려 불교는 비록 급변하는 정치 격랑에 휩쓸려 때로는 권력에 밀착하여 그 달콤함에 빠져 질책을 받기도 하고, 본래의 청정 수행 가풍에서 멀어진 모습을 보이기도 하였지만, 어느 시대보다 탁월한 유·무형의 성과들을 많이 남겼다. 당시의 대 선지식들이 남긴 성과들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한국 불교의 정수(精髓)로서, 불도들이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는 등불로서 커다란 힘이 되어주고 있다. 그 가운데 하나가 각훈 대사가 남긴 『해동고승전(海東高僧傳)』이다.

각훈 대사는 영통사(靈通寺) 주지를 지냈고, 화엄종에 속한 분이라 할 뿐 상세한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다만 『해동고승전』이 간행된 연대가 1215년 무렵이어서 대체로 12세기 중후반에서 13세기 전반에 걸쳐 활약한 것으로 보인다. 대사는 『고승전』에 ‘경북오관산영통사주지(京北五冠山靈通寺住持)’라고 스스로 기록하고 있고, 또한 흥왕사(興王寺)에 주석하기도 하였는데, 이로 미루어 대사가 고려 불교계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영통사는 대각국사 의천이 출가한 사찰인 동시에 고려 왕실에서 가장 자주 찾은 사찰이며, 흥왕사도 문종의 원찰이었기 때문이다. 대사는 이규보(李奎報), 이인로(李仁老), 최자(崔滋) 등 당대의 뛰어난 문인들과 자주 교류를 하며 사림(士林)에서도 명망이 높았다 한다. 또한 문인들은 대사를 ‘화엄월수좌(華嚴月首座), 화엄월사(華嚴月師)’라고 부르기도 하였고, 이인로는 대사를 각월(覺月)이라 하였다. 특히 대사는 스스로 호를 고양취곤(高陽醉   곤) 즉 세속을 훌훌 털고 술을 마시는 스님이라 부르기도 하여 활활(豁豁)한 수행 가풍을 지녔음을 짐작하게 한다.

대사는 『해동고승전』과 『선종육조혜능대사정상동래연기(禪宗六祖慧能大師頂相東來緣起)』 『시평(詩評)』 등의 저술을 남겼다고 하나, 현재 『시평』은 전하지 않고 『고승전』도 그 일부만이 전한다. 『고승전』은 그 머리에 ‘교학사자사문(敎學賜紫沙門)’이라 적고 있어 왕명에 의해 찬술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은 해동 불교를 전하고 일으킨 고승들의 전기를 모은 책이다. 거기에 서역과 인도, 중국에서 건너온 분들의 전기도 함께 기록하고 있어 사료(史料)로서의 가치도 높은 저술이다. 현재 전하는 것은 2권뿐이지만 훨씬 많았을 것으로 짐작하고 있다.

대사는 고승들의 전기를 기록하고 그 뒤에 찬탄하는 시(詩)를 더해 놓았는데, 이번 호에서는 그 시들 가운데 2편을 소개한다. 이 땅에 불도(佛道)의 씨앗을 뿌리고 일구어 온 대 선지식들의 면모를 알 수 있는 가르침이다. 『해동고승전』 원문은 『한국불교전서』 89쪽~101쪽에 실려 있다.

해동고승전

마라난타 찬(摩羅難陀 贊)1)

(먼 옛날) 세상을 떠돌며 살던 백성들은

그 성정이 대체로 거칠어

임금의 명을 거스르거나

나라의 영을 따르지 않는 일이 많았다

듣지 못하고 보지도 못한 것(부처님의 가르침)을

비로소 만나고서는

그 거친 성정이 바뀌어 선하게 되고

참다운 가르침에 따라 안으로 닦으니

이는 곧 불법(佛法)을 만난 인연에 따른 까닭이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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